brunch
연재 중 책 Check 10화

[서평] 세 세계의 대화, 세 권의 SF

우주의 거대한 질문과, 그 속에서 서로를 찾는 인간들

by KOSAKA

나는 역사소설 못지않게 SF도 좋아한다. 역사소설이 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화라면, SF는 먼 미래와 현재를 잇는 대화다. 작품 속 과학기술과 상상력은 허무맹랑한 환상이 아니라, 대개 개연성 높은 미래의 단면이다. SF는 쓰여진 시대의 문제와 해결 과제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일종의 사고실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소설이 ‘그때’와 ‘지금’을 오가며 현실을 비추듯, SF는 ‘언젠가’와 ‘지금’을 오가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결국 두 장르는 모두 ‘여기’와 ‘지금’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 같은 자리에서 독자와 대화를 나눈다.


류츠신은 중국 출신의 과학소설 작가로, 공학을 전공한 이력이 그의 작품 세계에 깊게 배어 있다. 그는 2008년 장편 《삼체》를 발표하며 중국 SF를 전 세계로 확장시킨 주인공이 되었다. 이 작품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현대사의 한 장면에서 시작해, 인류가 외계 문명과 접촉하게 되는 거대한 서사를 펼쳐 보인다. ‘삼체 문제’라는 물리학적 난제를 외계 행성의 불규칙한 환경과 결합시켜, 과학적 개연성과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작품 속 인류는 외계 문명의 위협 앞에서 과학과 기술을 동원해 살아남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갈등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류츠신의 문장은 장대한 스케일을 담아내면서도 차갑게 절제되어 있어, 우주의 냉혹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킨다. 《삼체》를 읽고 나면 우리는 인류가 우주에서 결코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불러오는 두려움과 겸허함을 오래도록 느끼게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로, 화학 박사 학위를 가진 과학자이자 다작의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방대한 양의 논픽션과 소설을 집필했지만, 무엇보다도 《파운데이션》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은하제국이 몰락해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사이코히스토리’라는 가상의 과학을 통해 집단의 미래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설정을 만들어냈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역사와 과학, 정치와 심리학이 얽힌 거대한 실험실 같다. 등장인물들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자유의지를 발휘하려 하지만, 아시모프는 끊임없이 묻는다. 개인의 의지는 집단의 필연을 바꿀 수 있는가. 그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직선적이고, 개념과 구조가 뚜렷해 독자는 복잡한 설정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파운데이션》을 읽다 보면 거대한 은하 문명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와 그 안의 인간 군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김초엽은 한국 SF의 새로운 목소리로, 생명공학을 전공한 과학도 출신답게 과학적 상상력을 따뜻한 서사와 결합시킨다. 데뷔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제목만으로도 아련한 울림을 준다. 이 소설집의 여러 단편들은 시간과 공간, 과학의 제약 속에서도 서로를 찾고 그리워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빛보다 빠를 수 없는 한계는 물리 법칙이지만, 김초엽은 이를 사랑과 이별, 상실과 기억의 은유로 변환한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은 가장 가까운 별처럼 반짝이며, 과학적 설정은 감정의 깊이를 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따뜻하고, 독자가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과학적 배경보다 감정의 결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이 세 작품은 각각 다른 문화권과 시대에서 태어났지만, 공통적으로 과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삼체》가 인류 문명을 우주의 냉혹한 법칙 속에 던져놓고 생존의 의미를 묻는다면, 《파운데이션》은 집단의 미래와 개인의 자유의지 사이의 긴장 속에서 문명의 흥망을 그린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그 광대한 배경을 인간의 감정으로 끌어와, 우리가 왜 여전히 서로를 찾는지를 이야기한다.


거대한 외계 문명과의 접촉, 은하제국의 몰락, 빛보다 느린 속도의 우주 여행이라는 서로 다른 무대 위에서, 세 작가는 모두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을 놓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그래서 이 세 작품을 함께 읽는 일은, 과학적 상상력의 스케일과 인간적 감정의 깊이를 동시에 경험하는 여정이 된다.


우리는 류츠신이 설계한 냉혹한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고, 아시모프가 그린 거대한 문명의 부침 속에서 역사의 방향을 가늠하며, 김초엽이 건네는 온기의 손길 속에서 여전히 사람을 향한 마음을 확인한다. 세 작품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과학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 해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 답은, 어쩌면 그 방대한 이야기들 속에 스며있다.


사족 1 : 《DUNE》도 포함시킬까 한참 고민했지만, 영화와 달리 원작소설은 스토리 서술과 심리묘사의 밸런스에 성공하지 못한 느낌이라서 제외했다.

사족 2 : 로버트 A. 하인라인과 아서 C. 클라크의 작품들도 좋아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과 함께 얘기하기에는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구성이라 그렇게 하지 않았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9화[서평] 시바료타로 3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