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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생각하는 광복80주년

경제·문화·기술, 모든 지표가 말하는 역전의 순간

by KOSAKA

오사카에 살며 맞이하는 2025년 여름, 광복 80주년과 한일수교 60주년이라는 이중의 기념일이 겹친 올해는 유난히도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매년 8월이 되면 한반도의 해방과 일본의 패전을 동시에 떠올리게 되지만, 이번 해에는 그 의미가 더욱 복합적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과거의 비극과 해방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80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떻게 관계가 변해왔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차분히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교과서 속에서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불렸고, 우리는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는 나라였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한국의 1인당 GDP는 이미 일본을 앞질렀고, 문화적 영향력에서도 한류는 전 세계를 휩쓸며 일본의 오랜 문화 브랜드를 넘어섰다. 오사카의 지하철 광고판에 등장하는 K-팝 아이돌과 드라마 포스터, 한국어를 배우려는 일본인 학생들의 행렬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과거의 ‘일본 따라잡기’라는 국가적 과제가 어느새 ‘한국이 이끄는 흐름’으로 전환된 셈이다.


국력의 평가 역시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국제 경제·정치 전문기관들이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이나 ‘국가 종합역량 지표’에서, 경제력·군사력·기술력·문화력 등을 종합한 순위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예를 들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최신 통계에서는 1인당 GDP뿐 아니라 첨단 제조업 비중, 수출 경쟁력, 디지털 인프라 수준에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군사력 평가에서도 세계 군사력 순위(Global Firepower Index) 기준으로 한국은 일본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전투력뿐 아니라 국방 예산과 방위산업 수출 증가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술력 면에서는 반도체·배터리·AI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일본을 크게 웃돌고, 문화력 부문에서도 K-팝, K-드라마, 웹툰, 게임 산업이 일본 콘텐츠를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하는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수치상의 추월을 넘어, ‘미래에 더 성장할 나라’라는 전망에서도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글로벌 컨설팅사와 싱크탱크들이 발표하는 ‘미래성장 잠재력 보고서’에서는 인구구조 변화의 속도, 기술 혁신 역량, 문화 파급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한국이 일본보다 역동성과 확장성이 크다는 분석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최근 국제사회에서 화제를 모은 사건이 있다. 바로 유엔에서 한국어를 공식 언어 중 하나로 채택한 결정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성취나 언어적 편의 차원을 넘어,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세계 공용어의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가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 세계 각국에서의 학습 수요, 그리고 한국의 외교·경제·문화적 입지가 결합된 결과이자, 글로벌 질서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건이었다.


오사카 거리를 걸으며, 나는 이 변화를 실감한다. 과거 일본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상점가나 음반점에는 이제 한국 아티스트의 앨범과 굿즈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카페 스피커에서는 최신 K-팝이 흘러나온다. 일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한국 드라마나 웹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르내린다. 예전에는 한국인이 일본 문화를 소비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면, 이제는 그 흐름이 상호적이면서도 균형이 한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단순한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광복 80년, 한일수교 60년의 의미는 어느 한쪽의 우위가 아니라, 두 나라가 어떻게 변했고 어떤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지를 묻는 계기다. 경쟁과 협력, 갈등과 화해의 반복 속에서도, 한일 양국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뗄 수 없는 이웃이다. 일본의 역사 속 공간에서, 한국의 오늘을 돌아보는 일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해방 직후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한국어가 세계 공용어 반열에 오르고, 문화와 경제에서 일본을 앞서게 된 지금—은 과거 세대가 흘린 땀과 노력 위에 세워진 풍경이기 때문이다.


올해 8월, 나는 오사카성 공원에 앉아 이 도시의 하늘을 바라본다. 80년 전 이곳은 전쟁 패배의 허탈감과 재건의 절박함 속에 있었을 것이다. 60년 전 수교를 맺을 당시만 해도, 한국은 전쟁 폐허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반세기 남짓한 시간에 역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한 개인의 생애로 치면 기적에 가까운 속도다.


그래서 광복 80주년을 맞은 나는, 오사카에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역사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좌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 그리고 그 거울 속에는 더 이상 열등감에 고개 숙인 모습이 아니라, 당당히 시선을 마주하는 한국이 서 있다는 것. 앞으로의 80년, 그리고 한일수교 140주년의 날에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그 상상만으로도 이 여름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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