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온도로 지키는 사랑, 말을 줄이고 삶을 더하는 사랑
이 글은 브런치 작가 채수아님의 브런치북 <한 남자를 사랑하는 중입니다 2>에 대한 저의 짧은 서평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사랑’이라는 큰 단어를 생활의 낱장들로 차분히 펼쳐 보이는 기록입니다. 선언이나 수사보다 장면을 먼저 세우고, 그 장면에 깃든 감정의 결을 천천히 더듬습니다.
현관에서의 배웅, 함께 차린 식탁, 밤늦은 설거지, 공기처럼 스며드는 안부의 말투 같은 것들이 한 관계를 어떻게 지탱하는지, 독자는 서두르지 않는 문장들을 따라가며 체감하게 됩니다. 덕분에 이 연재는 연애담이라기보다 ‘생활의 기술’에 관한 다큐멘트처럼 읽힙니다. 사랑을 감정으로만 말하지 않고, 방법과 태도의 언어로 환원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화의 톤’입니다. 갈등의 원인을 규명해 재판을 여는 대신, 상한 마음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에 집중하십니다. 말이 엎질러진 뒤 먼저 닦아야 할 것을 정하고, 사과의 타이밍과 호흡을 조절하며, 불필요한 자극을 가라앉히는 루틴을 장면 속에 배치합니다.
술상 앞에서 길게 이어지는 고백, 문이 세게 닫힌 뒤 찾아오는 떨림을 진정시키기 위한 산책, 부엌에서 나란히 선 채 접시를 말리는 저녁의 풍경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반복하기보다, 사랑이 작동하는 절차를 보여준다고 느껴집니다.
이 책이 설득력을 얻는 또 다른 이유는 ‘몸의 기억’을 정직하게 다루는 태도입니다. 시댁과의 오래된 긴장, 삶의 여러 전환에서 생긴 흔들림을 과장하지 않되 숨기지도 않습니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 그 반응을 낮추기 위해 호흡을 정리하고 거리를 걷는 장면은, 상처를 “극복했다”는 선언보다 일상에서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능한지 보여줍니다.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이 조심스럽고도 꾸준하게 서술되어, 독자는 ‘회복’이 감정보다 습관의 문제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부부의 서술도 평면적이지 않습니다. 생계와 돌봄, 집안과 바깥, 감정과 노동을 서로 나눠 쥐는 모습이 시간의 두께를 갖고 펼쳐집니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역할의 관념에 갇히지 않고 주방과 마음의 공간으로 스며들어 함께 서 있습니다.
특히 서로의 장점을 언어로 이름 붙이고, 그 호명을 생활의 관용구로 굳히는 발상은 인상적입니다. 칭찬을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표준어로 만든다는 것, 그 언어를 통해 서로의 자존을 지지한다는 것의 힘을 독자는 여러 차례 확인하게 됩니다.
노동에 관한 장면들 역시 균형감이 돋보입니다. 회사의 제도와 규칙, 성취의 언어를 자랑도 푸념도 아닌 ‘배움’의 프레임으로 끌어옵니다. 떠났다가 다시 일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감각과 책임의 윤리를 먼저 세웁니다
함께 일한 이들을 평가하는 문장들은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노력을 정확히 기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배움을 분명히 복기합니다. 사랑을 삶 전체의 무게 속에서 다룬다는 이 연재의 기조가 노동 서사와 맞물리며 책의 밀도를 높입니다.
문체는 간결하며 문단 호흡이 짧습니다. 감정의 진폭을 큰 수사로 밀어붙이는 대신, 사건의 순서와 감각의 이동을 질서 있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한두 문장으로 정확하게 단정하는 방식이 종종 긴 설명보다 큰 울림을 남기고, 그 절제가 텍스트의 신뢰도를 떠받칩니다. 독자는 강요되지 않은 공감, 과장되지 않은 따뜻함에 이끌려 천천히 몰입합니다. 보여주기가 말보다 앞서는 글쓰기의 장점이 끝까지 유지됩니다.
읽다 보면 이 연재를 관통하는 핵심어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대화, 사과, 호흡, 루틴, 배려. 이 다섯 단어는 관계를 좋게 보이게 만드는 장식이 아니라, 관계를 ‘살아 있게’ 만드는 방법론으로 기능합니다.
사과를 먼저 건네는 용기, 화제를 한 걸음 물려 숨 돌리게 하는 요령, 일상의 리듬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의지 같은 선택들이 켜켜이 쌓여 평화를 만들어냅니다. 평화가 무사태평의 부산물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임을, 이 책은 생활의 언어로 증명합니다.
이 브런치북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이자, 그 사랑을 지탱하는 ‘자기 돌봄’의 이야기입니다. 상처를 지우려 하지 않고, 상처와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우며, 서로의 장점을 일상의 문장으로 고정하는 일.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사랑을 감정의 불꽃이 아니라 생활의 온도로 이해하게 됩니다.
기념일과 이벤트가 아니라, 현관의 작별 인사와 저녁 식탁, 늦은 밤의 설거지와 잠깐의 산책 같은 작은 의식들이 사랑을 오래 지속시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이 연재는 차분하고도 단단하게 설득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다정한 고백이자, 현실적인 지침서이며, 무엇보다 삶을 견디게 하는 문장들의 묶음으로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