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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인티제의 사랑법》

INTJ의 시선으로 본 결혼·육아·관계 운영 매뉴얼

by KOSAKA

이 글은 브런치 작가 류귀복님의 브런치북 <인티제의 사랑법>에 대한 저의 짧은 서평입니다.


인티제(INTJ)는 MBTI 열여섯 유형 가운데 전략적 사고, 일관성, 독립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감정을 길게 풀어 말하기보다 구조를 세우고 합의를 중시하며, 관계를 “느낌”보다 “운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가는 그 성향을 방패가 아니라 거울로 사용합니다. “나는 서툴다 → 그래서 습관을 만든다 → 실수는 기록하고 보완한다”는 간단한 공식을 삶의 디테일로 실험합니다.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작은 배려의 시스템화’입니다. 차 문을 먼저 열어주기, 우산을 먼저 펴기, 꽃 한 송이를 주기 같은 사소한 동작이 루틴으로 반복됩니다. 작가는 이를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매일 할 수 있는 것, 매번 지킬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선별하고, 반복 가능하게 설계합니다.


사랑을 ‘감정의 충동’이 아니라 ‘행동의 일관성’으로 번역하는 태도가 책 전반을 지배합니다. 그 결과 독자는 관계의 신뢰가 거창한 이벤트보다 일상의 반복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확인합니다.


유머와 자기풍자도 균형을 잡습니다.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같은 연애의 고난도 질문에서 우왕좌왕했던 경험, 프러포즈의 ‘의식성’을 가볍게 보다가 낭패를 본 일, “새 여자 같아” 같은 위험한 농담을 반면교사로 남기는 태도는, 설교 대신 웃음을 남기고 학습을 촉발합니다.


INTJ에게 공감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훈련의 대상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이 있습니다. 실수를 적고, 다음 번에는 무엇을 바꿀지 적습니다. 이 간단한 기록 습관이 관계 운영을 덜 감정적이고 더 신뢰 가능하게 만듭니다.


물질과 상징을 다루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신혼 초 약속대로 명품 가방을 사준 일화나, “베스트셀러가 되면 시계를 선물하겠다”는 미완의 약속을 되돌아보는 장면에서 핵심은 가격이 아닙니다. 작가가 중시하는 것은 합의와 이행, 즉 ‘약속의 무게’입니다. 관계에서 약속은 이벤트가 아니라 프로토콜입니다.


약속이 작동하면 자존감과 안정감이 함께 올라가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책임의 언어로 정리합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의 과잉도, 회피도 없습니다.


시선이 부부에서 육아로 확장될 때 책은 더 따뜻해집니다. “그래”라는 응답 하나가 양육의 피로를 놀이의 리듬으로 바꾸는 장면, 씨름하다 아이의 이가 빠진 소동을 가족의 회복탄력성으로 봉합하는 장면은, 문제 해결형 성향이 가족의 웃음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즉시 공감, 즉시 칭찬, 그다음에 절차 수정의 합의. 이 순서가 루틴이 되면 육아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프로젝트로 바뀝니다.


작가의 서사 역시 이 책을 특징짓습니다. 브런치 활동을 통해 생긴 기회, 다수의 투고와 거절, 그럼에도 이어가는 글쓰기 루틴은, 관계와 글쓰기가 같은 근육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INTJ에게 기록은 변명이나 미화의 도구가 아니라 ‘운영 로그’입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실패했고, 다음에는 무엇을 바꿀지를 남깁니다. 이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의 진폭을 줄이는 대신, 개선의 속도를 높이는”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MBTI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지도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개인을 고정된 틀에 가두는 위험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운영’이라는 언어가 감정의 섬세한 결을 덮어버리는 듯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유형을 정체성의 낙인이 아니라 생활 습관을 설계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 정도로 다루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 균형을 되찾아주는 대목이 바로 ‘감사’의 고백입니다. 10년 전보다 감사할 일이 많아졌다는 고백은, 운영을 위한 운영이 아니라 결국 ‘함께 있음’을 지켜내기 위한 운영이라는 이 책의 방향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이렇게 이 브런치북은 사랑을 크게 말하지 않고, 작게 자주 실천하는 법을 제시합니다. 약속을 가볍게 하지 않고, 했으면 지키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며, 실수를 숨기지 않고 다음 시도를 설계합니다.


독자는 책을 덮고 나면 거창한 감동보다 “내일 당장 적용 가능한 한 가지”를 손에 넣게 됩니다. 예컨대 오늘 먼저 인사하기, 먼저 칭찬하기, 먼저 문 열기 같은 작은 선한 행동들입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신뢰가 되고, 신뢰는 감정의 변동을 견디는 토대가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제안하는 결론은 간단하고 단단합니다. 사랑을 유지하는 일은 감정의 고조에 기대지 않습니다. 약속을 가볍게 하지 않고, 했으면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이 책은 그 태도를 생활의 디테일로 증명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감동보다 합의와 이행의 힘이 더 또렷이 남습니다. 오래 가는 관계는 결국 이 단순한 원리를 잊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겠죠.


#. 추신. : 부족한 서평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에는 라이킷과 더불어 구독이라는 첨단기능 구비되어 있으니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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