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브런치 작가 오로지오롯이님의 브런치북 <기괴한 일상, 평범한 상상>에 대한 저의 짧은 서평입니다.
〈기괴한 일상, 평범한 상상〉은 도시의 하루를 또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연작입니다. 굵직한 사건이 없어도 긴장이 생깁니다. 작가는 지하철 손잡이, 엘리베이터 거울, 수도꼭지, 손톱깎이처럼 매일 보던 것들을 중심에 놓고, 한두 줄만 살짝 비틀어 낯설게 만듭니다. 그래서 독자는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내가 늘 지나친 건 무엇이었나?”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문장은 짧고 리듬이 있습니다. 설명을 길게 늘이지 않고 장면으로 밀고 갑니다. “무언가를 돌리면, 무언가가 오고, 그러면 다른 것이 열린다” 같은 연결 방식이 반복되며 속도가 붙습니다. 그러다 한순간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꺾입니다. 큰 반전이 아니라 작은 어긋남인데, 그 어긋남이 오래 남습니다. 피나 살로 흔드는 충격이 아니라, 어제와 똑같던 풍경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이는 정도의 차이. 그 미세한 차이가 이 연작의 힘입니다.
신체 조각의 이미지는 자주 나오지만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혀, 손가락, 눈동자 같은 조각들이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며 “나”의 경계를 흔듭니다. 여기서 신체는 공포를 위한 대상이라기보다 기준점처럼 쓰입니다. 비어 있는 자리의 크기, 빠져나간 자국의 깊이를 재는 표식입니다.
집, 방, 서랍, 가방 같은 수납과 빈자리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빠뜨렸는지, 그 체크리스트를 통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느낌이 납니다.
동물과 곤충도 효과적으로 쓰입니다. 불개미, 길고양이, 먼 나라의 새가 등장하면 도시의 시계와 다른 리듬이 겹쳐 들립니다. 그 순간 화면이 넓어지고, 우리가 사는 공간이 다른 생명과 얽혀 있다는 사실이 또렷해집니다. 거창한 생태 은유가 아니라, 지금 이 거리 위의 공존을 조용히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대중문화의 변주도 눈에 띕니다. 피터팬, ‘지하철도999’, 짱구 같은 익숙한 이름이 들어와도 향수 놀이로 흐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아는 “안전한 이야기”의 표면을 살짝 벗겨 현실의 질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읽고 나면 출근길 광고판, 편의점 진열대, 동네 목욕탕 같은 장면이 예전처럼 단순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텍스트가 우리 일상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하나 더 생깁니다.
언어 실험은 절제되어 있습니다. 자모 분절이나 의성어는 장식이 아니라 리듬과 긴장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우우우’ 같은 반복음은 배경음처럼 긴장을 유지하게 하고, 글자를 잘라 붙이는 방식은 금 간 벽, 깨진 사물의 윤곽을 눈앞에 세웁니다. 이 작품은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선명해집니다. 멈추고 내쉬는 호흡이 도시의 리듬과 맞물립니다.
무엇보다 시선이 늘 생활의 높이에 있습니다. 목욕탕, 엘리베이터, 지하철. 우리 모두가 지나가는 자리죠. 직장인으로 글을 쓰는 제 입장에서도 공감되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피로가 큰 사건으로 터지기보다 작은 균열로 스며드는 과정—퇴근길에 몸이 미세하게 틀어지는 느낌,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의 공허, 서랍을 열었을 때 이유 없이 스치는 낯섦—을 이 책은 잘 붙잡습니다. 그 자각이 다음 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연작의 구성도 탄탄합니다. 각 편은 따로 읽어도 선명하지만, 모아 읽으면 흐름이 생깁니다. ‘빈 것—채우기—다시 빈 것’의 왕복, 인간과 비인간의 교차, 유년의 기억과 성인의 무감각이 서로 반사되며 강도가 조금씩 높아집니다. 문장은 담백하고, 전환은 정확하고, 이미지는 과감합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불안과 몰입이 함께 자랍니다.
이 브런치북은 이렇게 “특이한 이야기 모음”이라기보다,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새로 배열해 감각을 바꿔보는 기록입니다. 오래된 안내 멘트, 붙은 머리카락, 낡은 그릇 같은 디테일을 다시 배치해, 우리가 매일 보는 것들의 의미를 점검하게 만듭니다. 읽고 나면 평범한 풍경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그 변화가 이 연작의 분명한 성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