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브런치 작가 공감디렉터J님의 브런치북 <SF스릴러 라스트 코드>에 대한 저의 짧은 서평입니다.
이 작품은 초반에 장황한 배경설명을 늘어놓지 않고 바로 사건으로 들어가 독자를 단숨에 끌어들입니다. 드론 추락, 잔해 수거, 데이터 분석이 빠른 리듬으로 이어지며 독자는 곧장 작전의 흐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긴 서두 대신 사건 전개로 세계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초반 몇 편이 특히 빠르게 읽힙니다. 설명은 꼭 필요한 순간에만 간결하게 붙고, 대부분의 정보는 임무의 준비·집행·결과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중반으로 들어서면 무대가 크게 확장됩니다. 한 도시에 국한된 교란 작업이 다른 대륙의 관제와 맞물리고, 동시에 여러 노드를 겨냥하는 임무가 이어집니다. 각 작전에는 성공 조건이 명확히 제시되고, 진입 시간이나 우회 경로, 통신 품질 같은 요소가 갱신됩니다. 독자는 무엇이 가능하고 어디부터 무리인지 감을 잡게 되며, 실패했을 때 어떤 대가가 뒤따르는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덕분에 이야기는 기술 과시로 흐르지 않고, 끝까지 ‘결정–집행–기록’의 구조를 유지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위기의 규모가 인류 전체로 확장됩니다. 그럼에도 전개가 비약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앞선 단계에서 이미 기술이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와 어디까지 가능한지가 충분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무리하게 한계를 넘어서려 하면 인명 피해나 국제적 갈등 같은 대가가 뒤따른다는 점도 차례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후반의 큰 스케일 역시 앞서 쌓인 규칙과 제약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작품은 예측 능력을 가진 시스템이 세계의 움직임을 설계하려 할 때, 인간은 어떤 절차로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작전의 준비, 실행, 결과 보고가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매 단계마다 기준선이 조금씩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한 장면의 성공 여부가 곧바로 다음 장면의 조건을 바꾸며, 이야기는 끝까지 이 리듬을 유지합니다.
비교를 하나 들자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 떠오릅니다. 그 작품에서 예측은 먼 시간의 평균적인 흐름을 다루는 설정이었습니다. 반면 「라스트 코드」의 예측은 지금–여기의 작동 방식으로 바뀝니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 특정 노드의 조건이 변하면 결과도 함께 달라집니다. 독자는 거대한 이론보다 당장의 임무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사의 동력이 발생합니다.
인물 묘사는 절제되어 있습니다. 주인공과 동료들은 각자의 숙련도를 넘어서려 하지 않고, 회의실에서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료를 정리하며, 현장에서는 사전에 합의한 규칙을 지킵니다. 이 절제는 냉정함이 아니라 신뢰의 바탕으로 읽힙니다. 판단이 어긋나 손실이 생겨도 그 여파는 곧바로 다음 임무 설계에 반영됩니다. 감정은 절제되고 기록은 쌓입니다. 이 리듬 덕분에 감정의 과열 없이도 긴장이 유지됩니다.
서술 역시 일관됩니다. 액션은 불필요한 수식 없이 공간·움직임·결과 순서대로 진행되고, 설명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보고 형식의 문장이 짧게 끼어듭니다. 독자는 인물의 말투보다는 절차의 흐름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런 건조한 스타일은 작품의 성격과 잘 어울리며, 정보가 축적되고 검증되는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읽는 재미는 장면의 선명함에서 나옵니다. 작전 준비, 돌입, 변수가 발생하는 순간이 차례대로 정리되고, 실패가 나와도 극적인 파국으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실패의 흔적이 다음 판단을 바꾸며 이야기는 축적됩니다.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작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임무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어떤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는지, 실패했을 때 어떻게 철수하고 재정비하는지가 묘사되면서 독자는 복잡한 장면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습니다.
각 편의 시작과 끝은 목표와 결과가 분명히 드러나 독자의 피로를 줄여줍니다. 과도한 설명이나 감정 과잉 없이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한 편을 읽고 나서도 여유가 남고, 동시에 다음 편을 궁금해하게 만듭니다. 연재물로서의 흡인력과 단행본으로서의 완성도를 함께 갖춘 셈입니다.
이렇게「라스트 코드」는 무대를 넓히면서도 독자가 따라갈 수 있는 기준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사건의 속도가 빨라져도 판단의 근거는 흐려지지 않고, 장면은 사실 위주로 진행됩니다.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인물들의 결정이 흔적으로 남습니다.
독서를 마치면 몇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더 정밀한 예측이 과연 더 나은 사회를 보장할 수 있을까. 기계가 대신 판단하는 시대에 책임은 누구의 몫이어야 할까. 압도적인 성과가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절차와 합의를 마련해야 할까. 작품은 이 질문들에 단정적인 대답 대신 읽는 동안의 긴장감과 읽고 난 뒤의 여운을 동시에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