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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월 천만원을 버렸습니다》

by KOSAKA

이 글은 브런치 작가 마음의 온도님의 브런치북 <월 천만원을 버렸습니다>에 대한 저의 짧은 서평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월 천만 원’이라는 강한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 기준의 자리를 다룬 기록입니다. 한 사람이 방송작가, 광고, 에스테틱 운영을 거치며 쌓아 올린 성취의 언어(열심, 치열함, 버티기)가 어느 시점부터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을 인정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그.만.두.기.로 했다.” 화려한 수사 없이, 이 한 줄이 전체를 이끕니다.


책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사건보다 장면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예약 시간에 늦는 손님, 유효기간이 지난 잔액을 요구하는 손님, 카운터 앞에서 계산하는 업주의 마음 같은 작은 장면들이 규정과 배려,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보여 줍니다.


‘진상’이라는 단어를 손쉽게 소비하지 않고, 때로는 자신도 누군가의 진상이었을 수 있음을 짧게 인정하는 태도가 글의 온도를 맞춰줍니다. 과장된 분노 대신 “이 기준에서 어떤 결정을 하면 다음 손님에게도 설명이 가능할까”를 묻는 방식이 독자를 방어 없이 따라오게 만듭니다.


숫자의 등락을 다루는 방식도 차분합니다. 특정 달의 호실적과 다음 달의 급락이 교차하지만, 저자는 매출 그래프를 늘어놓기보다 그때의 몸과 마음의 반응을 기록합니다. 수면의 질, 오후의 무기력, 뒷목의 긴장 같은 구체적 상황이 숫자의 의미를 대신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빨래’의 모티프가 인상적입니다. 얼룩과 탈수, 말림과 개킴이라는 일상적 순서로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는 장면은, 멈춤의 결정이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감지들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거창한 이론 없이도 읽는 이가 상황을 따라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반 이후 책의 초점은 관계로 옮겨갑니다. 일터의 손님과 직원, 집안의 대화, 온라인의 댓글까지, 서로 다른 장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룰을 다시 정리합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권리엔 책임이 붙고, 배려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책은 이 상식을 한 번 더 ‘현장 언어’로 번역합니다. “한 번 넘어가면 규칙이 무너진다, 그러나 규칙만 남으면 관계가 상한다.” 그 사이에서 실제로 어떤 문장을 꺼내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짧은 사례들로 보여 주는 점이 이 브런치북의 장점입니다. 독자는 교훈을 외우기보다, 다음 비슷한 장면에서 쓸 수 있는 말 한 줄을 챙기게 됩니다.


후반부의 키워드는 더 명확합니다. 청취, 간격, 평균. 말 줄이고 듣는 법, 너무 붙지 않도록 간격을 두는 법, 극단이 아닌 평균으로 돌아오는 법이 그것입니다. 방송국에서, 매장에서, 가정에서 모두 필요한 기술인데, 작가는 이를 거창한 처방으로 쓰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번 상대 말 끝까지 듣기”, “일요일엔 예약 받지 않기”, “열 줄 쓰면 세 줄 지우기” 같은 작은 행동으로 내려 앉힙니다. 그 결과 책은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실행 가능한 생활 노트로 읽힙니다.


문체는 브런치에 잘 맞는 리듬입니다. 문장이 길지 않고, 괄호와 점찍기 같은 가벼운 장치를 최소한으로 사용합니다. 필요할 때만 한 컷을 강하게 남깁니다. 예컨대 수영장 타일의 네모 프레임은 우울과 압박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화면으로 보여 줍니다. 방송작가 출신다운 편집 감각이 살아 있어, 장면 전환이 매끄럽고 호흡이 고르게 유지됩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감정이 치솟지 않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남는 여운은 분명합니다.


이 책을 퇴사 에세이로만 부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은 돈을 버렸다는 자랑이 아니라, 재단의 도구를 바꿨다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외부의 잣대(매출, 순위, 그래프)로만 하루를 재던 습관에서, 내부의 기준(몸, 마음, 관계)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입니다. 돈의 중요성을 낮추지 않되, 돈 하나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겠다는 정리. 그래서 결론은 감상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이 방식으로 간다.” 담백합니다.


하나의 책으로 묶어 읽을 때 흐름도 깔끔합니다. 선언으로 시작해(멈춤), 과거의 작업과 사업을 되짚고(회고), 현장의 마찰을 통과한 뒤(충돌), 생활 단위에서 속도를 조정(조정)하고, 마지막에 기준을 다시 세웁니다(재정의). 각 글의 키워드가 느슨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지도로 작동합니다. 덕분에 독자는 “왜 멈췄는가”보다 “멈춘 다음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자연스레 시선을 옮기게 됩니다.


요약하면, 이 브런치북은 큰 숫자로 출발해 생활의 크기로 무사히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과장과 비극을 피하고, 일·관계·몸을 한자리에 놓고 다시 조율합니다. 읽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일과 기준을 비교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재고 있는가, 지금의 잣대는 여전히 유효한가, 멈춘다면 어디서부터 줄일 것인가.


책은 정답을 주지 않지만, 작은 시작을 보여 줍니다. 잘 듣고, 간격을 두고, 평균으로 돌아오고, 필요하면 멈추는 것. 그 정도의 기술만으로도 하루는 꽤 다르게 굴러간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그래서 제목의 ‘버림’은 파괴가 아니라 삶을 위한 선택에 가깝습니다. 오래 쓴 잣대를 내려놓고 지금의 자신에게 맞는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 이 책은 그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 줍니다. 독자는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비춰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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