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 거실에 햇빛이 바닥을 넓게 훑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엉덩이를 반쯤 걸친 채, 펼치다 만 책과 덜 써진 노트를 사이에 두고 물 한 잔을 들었다. 읽히지 않는 문장들과 쓰이지 않는 문장들이 서로를 흉보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책은 내게 “넌 끝까지 들을 마음이 없지?”라고 묻는 것 같았고, 노트는 “네가 남기고 싶은 건 대체 뭔데?” 하고 비웃는 기세였다.
벨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구두 소리가 규칙적으로 바닥을 건너왔다. 양복 차림의 남자 둘이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한 명은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무늬 없는 짙은 네이비. 줄무늬가 먼저 말했다.
“저는 ‘읽기’입니다.”
네이비가 이어받았다. “저는 ‘쓰기’죠. 오늘은 우리 얘기를 하러 왔습니다.”
나는 컵을 내려놓았다. “저는 요즘 당신들한테 회의가 많습니다. 읽기는 남의 생각에 기대는 일 같고, 쓰기는 자기 과시 같고.”
읽기가 웃었다. “그 말,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래도 묻겠습니다. 어제 하루 가운데 남의 생각에 제대로 기대 본 적이 있었습니까? 기대는 게 곧 의존이 아닙니다. 기대는 무게를 나누는 일이지요.”
“나누는 것 치고는, 내 머리만 더 무거워졌습니다. 읽을수록 내가 없는 것 같아요.”
쓰기가 다리를 꼬았다. “그래서 제가 필요합니다. 읽기는 무게를 나누고, 쓰기는 무게의 모양을 정리합니다. 모양이 잡히면 들고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상자 없이 물건을 들고 가려는 중입니다.”
나는 노트를 슬쩍 덮었다. “모양은 대체 왜 필요합니까? 삶은 매번 새로 흘러가는데, 문장으로 고정하면 거짓이 되지 않나요?”
읽기가 손바닥을 펼쳤다. “물의 흐름을 연구하는 사람도 일단 표식을 남깁니다. 이 돌에서 저 돌까지가 한 구간, 물살의 방향은 이렇게. 그 표식이 거짓이 아니라 관찰의 시작이 됩니다. 당신의 문장은 관찰표입니다. 세상을 묶으려는 끈이 아니라, 나와 세계가 접촉했던 흔적.”
쓰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쓰기는 항상 임시적입니다. 오늘의 문장은 내일 고쳐야 옳습니다. 고치기 위해서라도 먼저 써야 하지요. 당신은 ‘완벽한 첫 문장’을 찾다가 첫 걸음을 놓치고 있습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말투는 사무적이었으나 적대적이지 않았다. 현관 위 풍경처럼 말들이 제 위치로 돌아가는 느낌.
“그런데,” 내가 말했다. “읽기와 쓰기 모두 결국 나를 증명하려는 욕심 아닙니까? 누가 나를 읽어주는 것도 아니고.”
읽기가 테이블 위 펼쳐진 책의 귀퉁이를 가리켰다. “여기 연필로 밑줄 그은 부분, ‘남을 이해하는 일은 세계의 견고함을 줄인다’. 당신이 밑줄 그었습니다. 그 순간, 당신은 작가의 생각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문장을 빌려 자신을 얇게 만들었습니다. 견고함이 줄어든 자리로 바람이 들어오지요. 그 바람이 당신을 환기합니다. 욕심은 닫는 힘이고, 이해는 틔우는 힘입니다.”
쓰기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쓰기는 ‘증명’이 아니라 ‘회계’에 가깝습니다. 하루를 정리하고 분류하는 작업. 남에게 보여주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제출하는 결산서. 잉크는 자랑의 잔여물이 아니라 검토의 흔적입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노트를 다시 펼쳤다. 종이의 질감이 손바닥을 차분하게 눌렀다. 그러나 의심은 남아 있었다. “그래도, 당신들을 통해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책을 다 읽고 나도, 글을 다 쓰고 나도, 생활은 제자리 같은데.”
읽기가 시계를 보았다. “생활이 바로 우리를 확인하는 실험실입니다. 어제 당신은 장을 보러 나가 소금과 설탕을 같은 선반에서 집어 들려다 멈췄죠. 포장지의 작은 글씨를 읽고 다시 골랐습니다. 그 작은 읽기가 국의 맛을 바꿨습니다. 결과는 식탁에서 나왔지요. 읽기는 그렇게 생활의 미세한 조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쓰기가 내 노트 첫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톡 두드렸다. “그리고 당신이 새벽에 쓴 짧은 메시지, 그 한 줄이 한 사람의 하루를 바꾸었습니다. ‘오늘 네가 이야기해 준 그 장면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 문장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았을 겁니다. 쓰기는 타인의 시간 속에 작은 수납칸을 만들어 줍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읽기와 쓰기는 결국 타인을 위한 일이라는 건가요?”
읽기가 미소 지었다. “타인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당신을 위한 일입니다. 당신이 타인을 섬세하게 대할수록, 당신의 내부는 덜 거칠어집니다. 거칠지 않은 내부는 삶의 충격을 더 잘 흡수합니다. 읽기는 그 완충재를 만들어 줍니다.”
쓰기가 덧붙였다. “그리고 쓰기는 그 완충재를 어디에 둘지 정합니다. 아무 데나 쌓아두면 또 흩어집니다.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단, 제목, 목록. 구조는 당신이 다시 돌아올 길을 표시합니다. 길이 표시되면 길 잃을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 남은 시간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확인할 기회입니다.”
그들의 말은 과장되지 않았고, 확인 가능한 사례로 내 생활을 불러냈다. 나는 장바구니와 메시지, 식탁과 사람 얼굴을 차례로 떠올렸다. 의미란 거창한 표어가 아니라, 그 모든 순간을 조금 덜 낭비하도록 만드는 각도의 문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읽고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읽기가 의자를 조금 뒤로 밀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읽을 여백’을 만들면 됩니다. 창문을 닦거나, 손을 씻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몸을 움직여 표면을 정리하면 시선이 넓어집니다. 여백이 생기면 글자가 다시 들어옵니다.”
쓰기가 손목을 돌렸다.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쓰는 행위의 난이도’를 낮추면 됩니다. 오늘 들은 말 한 줄, 내일 해야 할 일 셋, 고마웠던 얼굴 하나. 문장은 나중입니다. 목록이 먼저입니다. 목록이 쌓이면 자연히 문장이 따라옵니다.”
그들은 마치 상담사가 업무 매뉴얼을 설명하듯 담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쓰기가 포켓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인쇄된 표였다.
— 오늘의 읽기 체크:
하나의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 보기
읽은 것을 한 줄로 요약하기
그 요약을 누구에게 건네줄지 떠올리기
— 오늘의 쓰기 체크:
오늘 본 장면 하나 기록하기
오늘 들은 말 중 다시 듣고 싶은 말 한 줄 옮기기
내일의 나에게 부탁 한 가지 적기
“이건 형식입니다.” 쓰기가 말했다. “형식은 사유를 억압하는 틀이 아니라, 사유를 꺼낼 손잡이입니다.”
읽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느끼는 회의는 우리 때문이 아니라, ‘증명하려는 당신’ 때문입니다. 누가 더 많이 읽었는지, 누가 더 잘 썼는지는 당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문제는 ‘듣는 능력’과 ‘건네는 방식’입니다. 그 두 가지가 개선될 때, 의미는 성과가 아니라 감각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구두를 다시 정렬하듯 몸을 세웠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그럼 당신들은 어디로 돌아가는 겁니까?”
쓰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거실에 있을 때는 거실의 가구처럼 있고, 가방 안에 있을 때는 가방의 필기도구처럼 있고, 사람 사이에 있을 때는 말의 순서처럼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소는 없습니다. 다만 호출 방법은 하나입니다. 책을 펼치거나, 펜을 들거나.”
읽기가 문고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남기는 문장 하나. ‘의미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배정된다.’ 오늘 하루 동안 당신은 무엇에 의미를 배정할지, 그 대상과 방식을 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읽기는 대상을 보여주고, 쓰기는 방식을 정합니다.”
문이 닫혔다. 거실은 다시 집의 크기로 돌아왔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책을 다시 펼쳤다. 아까 밑줄을 그은 문장 아래에 작은 점을 하나 찍었다. 오늘의 내가 이 문장을 다시 지나갔다는 표시. 그리고 노트를 펼쳐 ‘오늘의 목록’을 만들었다.
— 오늘 본 장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 손을 들어 인사한 두 사람
— 다시 듣고 싶은 말: “형식은 손잡이다.”
— 내일의 나에게: 식탁등 아래 나사 조이기, 장바구니 점검, 창틀 닦기
목록을 적는 동안 마음속의 잡음이 약해졌다. 어쩌면 나는 거창한 변화 대신 작은 정비를 필요로 했는지도 모른다. 읽기는 나를 바깥으로 이끌었고, 쓰기는 바깥에서 들고 온 것을 제자리에 두게 했다.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이전보다 가벼웠다. 문장이 내게 달려들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와서 앉았다. 나는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짧게 썼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내 말은 가능한 한 정확히 건네는 일. 그 두 가지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의미는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손에 닿는 거리, 내 눈이 따라가는 길 위에 있었다.
한 페이지를 마치고, 작은 한 문단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낼 메시지의 초안을 만들었다. “오늘 네가 말한 그 장면, 아직도 떠오른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서 한 번은 전해진 것 같았다.
나는 펜을 덮고, 책을 뒤집어 올려놓았다. 거실 창문을 열자 공기가 새로 들어왔다. 읽기와 쓰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손잡이는 내 책상 위에 정확히 놓여 있었다. 손잡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덜 불안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한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고, 한 문장을 끝까지 건네는 일. 그 두 개의 문장을 나는 마치 사람처럼 대할 것이다. 그러면 남은 하루가, 아마도 내 삶이, 어제보다 조금은 살 만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