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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음울한 우물

by KOSAKA

사직서를 낸 날, 그는 그 길로 회사를 나왔다.

서류봉투 하나만 들고, 엘리베이터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잠시 바라보았다.
십오 년 동안 매일 보아온 얼굴이었다.
조금은 낡았지만, 여전히 정리된 표정.

그는 거울 속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어딘가 낯설었다.

오늘부터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된 얼굴이었다.


퇴근 시간보다 훨씬 이른 오후, 그는 역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햇살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발밑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있었고, 도로 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그는 보았다 —
평소에는 없던 좁은 골목과, 그 끝에 서 있는 낡은 폐가를.

그 집은 오래된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잡초가 어깨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그는 이유도 모른 채 그 문을 밀고 들어갔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돌로 둘러싼 우물이 있었다.
덮개는 반쯤 부서져 있었고, 안쪽에서는 냉기 같은 공기가 올라왔다.

그는 우물가로 다가갔다.
안쪽을 내려다보자, 어둠이 있었다.
빛도, 소리도, 냄새도 없었다.
단지 깊이만이 존재했다.


그는 어둠을 필요로 했다.

완전한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
그곳에 있으면, 자신과 외부 세계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자신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낡은 밧줄을 찾아 우물의 가장자리에 묶었다.
손바닥엔 먼지가 묻었고, 밧줄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는 가방을 벗어두고, 서류봉투를 돌 위에 올려놓았다.
현실이라는 짐을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그는 천천히 우물 안으로 몸을 내렸다.


첫발을 내딛자 공기가 바뀌었다.
빛이 점점 줄어들고, 소리는 멀어졌다.
마지막 한 발을 떼는 순간, 그는 완전한 어둠 속에 있었다.

그는 우물 바닥에 앉았다.

시간의 감각이 사라졌다.
며칠이 흘렀는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시계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처음엔 귀 속에서 자신의 맥박이 들렸다.
그 다음엔 아주 멀리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몽고 병사들의 행진처럼 무겁고 일정한 리듬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이름 모를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것이 꿈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안쪽 어딘가가 천천히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어둠 속에서 어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것이 내면으로 향하는 문인지, 혹은 바깥으로 나가는 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두드림이 필요했다.
그 소리가 자신에게 되돌아올 때마다, 그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언제였을까, 머리 위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그는 그 빛이 현실로의 출구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세계의 입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더는 상관없었다.
그는 밧줄을 잡고, 천천히 위로 몸을 올렸다.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저물고 있었다.
공기에는 흙냄새와 풀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의 먼지를 털었다.
손끝이 따뜻했다.
마치 우물의 돌이 남겨놓은 체온처럼.


정원의 한쪽에서 고양이가 나타나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어둡지 않았다.
그는 고양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제 올라왔어.”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바람이 불었다.
잎사귀 몇 장이 흔들리며 햇빛의 잔향을 흩뿌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밝고 푸른 기운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그의 뒤에는 여전히 우물이 있었지만, 더 이상 그를 끌어당기지 않았다.


어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그 어둠 속의 공기가, 어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마치 그의 마음속 공기 또한 어딘가 그렇게 달라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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