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독특하다. 리포트를 쓰기 위해 도서관 카드 목록함을 뒤지거나 타자기를 두드렸고, 삐삐와 시티폰을 거쳐 벽돌만 한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스마트폰이라는 혁명에 적응하느라 눈을 비볐다. 그리고 이제 50대, 겨우 세상의 속도에 발맞췄나 싶었는데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챗GPT가 등장했을 때 느낀 감정은 경이로움보다는 '피로감'이었다. "또 배워야 해?"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회사에서는 MZ세대 후배들이 AI 툴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업무 시간을 단축하는 모습을 본다. 그들 앞에서 나는 마치 구석기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지난 30년 경험이, 내가 쌓아온 직관과 노하우가, 저 기계 덩어리의 몇 초짜리 연산보다 못한 취급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격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존재 가치, 나의 시효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였다.
경험은 낡은 것이 아니라, 가장 정교한 명령어다
하지만 AI를 조금씩 곁눈질하며 써보기 시작한 지 1년, 나는 묘한 역설을 발견했다. AI는 똑똑하지만, 지혜롭지는 않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만, 맥락을 읽는 눈치는 없다. 여기서 우리 50대의 기회가 생긴다.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은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다. 그런데 좋은 질문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책상 위 매뉴얼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그리고 성공의 경험이 축적된 '연륜'에서 나온다.
20대 사원이 AI에게 "거래처 사과 메일 써줘"라고 시킬 때, 산전수전 겪은 50대는 이렇게 주문할 수 있다. "거래처 김 상무님은 체면을 중시하고 팩트보다는 감성적인 호소에 약해. 이번 납기 지연은 우리 실수지만 지난 10년의 신뢰를 강조하면서, 정중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의 이익을 암시하는 톤으로 사과문을 작성해 줘."
결과는 천지 차이다. AI는 자동차의 엔진일 뿐이고, 그 핸들을 쥐고 목적지를 설정하는 내비게이션은 바로 우리의 경험이다. 내가 가진 30년의 '감'이 AI라는 고성능 엔진을 만났을 때, 비로소 폭발적인 시너지가 난다. 50대의 경험은 낡은 훈장이나 짐이 아니었다. 그것은 AI를 가장 잘 부릴 수 있는 정교한 명령어이자 지휘봉이었다.
비서로 부릴 것인가, 상사로 모실 것인가
50대에게 AI는 '대체재'가 아니라 가장 든든한 '보완재'가 되어야 한다. 노안이 와서 작은 엑셀 숫자를 들여다보기 힘들 때, AI는 순식간에 데이터를 분석해 준다. 외국어 이메일 작성이 부담스러울 때, AI는 유려한 번역가가 되어준다.
나는 이제 AI를 나의 '건방지지만 유능한 20대 비서'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료 조사, 초안 작성, 요약 같은 '노가다'는 비서에게 맡긴다. 대신 나는 그 결과물이 우리 회사의 철학에 맞는지,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데스크'를 본다.
이렇게 업무의 하단부를 AI에게 맡기고 나니, 오히려 50대인 내가 집중해야 할 본질이 보였다. 그것은 '판단'과 '관계'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결정하는 결단력, 그리고 차가운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의 온기를 나누는 일. 후배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밥 한 끼 사주는 공감 능력, 클라이언트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읽어내는 눈치.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인간, 특히 어른인 우리가 지켜야 할 성역이다.
다시, 배우는 학생이 되어
물론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술은 너무 빠르고 나는 여전히 느리다. 하지만 50대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참 좋은 나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점, AI는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새로운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글쓰기를 포기했던 친구는 AI의 도움을 받아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림이라곤 그려본 적 없던 선배는 생성형 AI로 웹툰을 그려 손주에게 보여준다. 외국어를 못 해서 해외여행을 주저하던 지인은 통역 앱 하나 들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AI는 50대의 잃어버린 꿈을 복원해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쫄지 말자. AI를 공부하려 들지 말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자. 20대처럼 빠르게 습득하지 못해도 괜찮다. 우리는 느리지만 깊게 이해할 수 있다.
50대, 우리는 아날로그의 낭만과 디지털의 효율을 모두 이해하는 유일한 세대다. 이 양손잡이의 능력을 가지고 AI라는 파도 위에 올라탄다면, 우리의 인생 후반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하고 흥미진진할 것이다.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의 지혜는 더 빛난다. 그리고 그 지혜의 정점은 50대에 있다. 나는 오늘 저녁에도 나의 AI 비서에게 말을 건다.
"어이, 친구. 이번에는 좀 더 근사한 기획안 초안 좀 잡아봐. 방향은 내가 정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