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보다 소중한 의미
해마다 12월이 되면 도시는 붉고 푸른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과 화려한 트리 아래서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분'의 생신을 축하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12월 25일은 실제 예수의 생일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가 추운 겨울밤에 태어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오히려 밤에 양 떼를 치던 목자들의 이야기는, 팔레스타인의 기후를 고려할 때 그 시기가 추운 겨울보다는 봄이나 가을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2,000년 넘게 '가짜 생일'을 이토록 정성스럽게 기념해 온 것일까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로마 시대로 가보면 답이 보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12월 말은 '동지(冬至)'의 시기였습니다. 태양이 가장 낮게 뜨고 밤이 가장 긴, 죽음과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이었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동지가 지나면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로마인들은 이를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이 부활하는 날로 믿고 축제를 벌였습니다.
당시 초기 기독교는 이 강력한 이교도의 축제 문화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신, 그 의미를 흡수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세상의 참된 빛이 오셨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치환한 것이죠. 즉, 크리스마스는 천문학적 현상과 종교적 상징이 결합해 만들어진 '인류학적 발명품'에 가깝습니다.
누군가는 '가짜 날짜'라는 사실에 허탈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인문학적 흥미로움을 발견합니다. 인간은 때때로 사실보다 '의미'를 더 갈구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짜 뒤에 숨겨진 본질은 '희망의 기호화'입니다.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시기에 가장 밝은 빛의 존재를 기념하겠다는 의지. 그것은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따뜻한 위로이자, 다시 봄이 올 것이라는 강력한 자기 암시였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이곳 오사카의 거리도 성탄의 열기로 가득합니다. 미도스지의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제 곧 이곳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저에게, 이번 크리스마스는 유독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실제 생일이 언제인지가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날을 핑계 삼아 평소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건네고, 소외된 이들을 한 번 더 돌아보며, 내년이라는 새로운 태양을 맞이할 용기를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날짜는 비록 로마의 태양신 축제에서 빌려온 '차용물'일지라도, 그날을 채우는 우리의 사랑과 선의는 분명한 '실재'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결국 '탄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역사적 인물의 실제 생일이든, 아니면 우리 마음속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이든 말입니다.
어둠이 가장 깊을 때 빛이 시작된다는 동지의 역설처럼, 우리 삶이 가장 춥고 어둡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어쩌면 우리 안의 가장 눈부신 빛이 태어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가짜 생일'이면 어떻습니까.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속에 따뜻한 빛 한 줄기가 태어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크리스마스의 사명은 충분히 완수된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