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7세기의 하이테크, 21세기의 국격을 말하다

백제 박사들의 설계도에서 K-반도체까지, 기술로 잇는 한일 관계의 재해석

by KOSAKA

2026년 1월, 이재명 대통령의 일본 나라(奈良) 방문은 한일 외교사의 정형화된 틀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정치적 수사와 의전이 난무하는 도쿄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도(古都) 나라의 호류지(法隆寺)를 찾은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는 물리적 실체 너머, 그 안에 흐르는 ‘첨단 기술의 DNA’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양국의 미래를 재정의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우리는 흔히 반도체나 인공지능을 현대의 전유물이라 생각하지만, 7세기의 시각에서 호류지는 오늘날의 슈퍼컴퓨터나 최첨단 반도체 팹(Fab)에 비견될 만한 국가적 하이테크 프로젝트였다. 당시 한반도의 백제와 고구려가 일본에 전수했던 기술은 단순한 문화적 전파를 넘어, 당대 동아시아가 도달할 수 있었던 공학적 한계치에 도전한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호류지의 상징인 5층 목탑을 지탱하는 심주(心柱) 시스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대의 내진 설계가 무색할 정도의 정교한 엔지니어링을 발견하게 된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각 층의 흔들림을 서로 상쇄시켜 건물 전체의 붕괴를 막는 이 기술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립식 전파탑인 도쿄 스카이트리의 설계에도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 1,400년 전의 기술이 21세기 마천루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술이란 결코 단절되지 않으며, 시대의 옷만 갈아입을 뿐 그 본질적 지혜는 면면히 이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대통령이 호류지의 기둥을 어루만지며 느꼈을 감각은 아마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클린룸에서 느끼는 자부심과 그 궤를 같이했을 것이다. 당시 백제에서 건너온 와박사(瓦博士)나 사공(寺工)들은 오늘날로 치면 공정 설계를 담당하는 수석 엔지니어이자 시스템 아키텍트였다. 그들은 단순히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척박했던 일본 땅에 ‘문명이라는 시스템’을 이식하고 최적화한 솔루션 수출업자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묘한 지점에서 맞물린다. 고대 한반도의 첨단 기술이 일본의 국가 기틀을 잡는 데 기여했다면, 근대화 과정에서는 일본의 기술이 한국의 산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다시금 반도체와 배터리, 디지털 혁신이라는 무기를 들고 세계 기술 패권의 정점에 서 있다. 이번 대통령의 방문은 이러한 역사의 순환 고리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호류지 내 백제관음상의 자비로운 미소 앞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온고지신’은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기술적 뿌리에 대한 확신이었다. 일본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문화유산의 심장부에 한국인의 기술적 지문이 깊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기술 경쟁을 적대적 대립이 아닌 ‘공동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엔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심리적 토대가 된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저출생, 고령화, 에너지 전환과 같은 사회적 난제들은 7세기의 사찰 건축이 해결하려 했던 ‘국가적 구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당시의 사찰이 종교를 통해 민심을 통합하고 기술을 통해 국력을 과시했듯, 오늘날의 첨단 기술 역시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나라현에서 논의된 ‘지역 소멸 대응’이나 ‘실버 산업 협력’은 호류지를 세웠던 고대 기술자들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의제들이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하며, 그 길에서 한일 양국은 천 년 전 그러했듯이 다시금 긴밀한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라는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도쿄의 화려한 조명보다 나라의 고즈넉한 사찰에서 한일 관계의 해법을 찾으려 했던 이번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것은 20세기라는 짧고 아픈 기억에 매몰되지 않고, 7세기라는 더 넓고 깊은 시간의 지평 위에서 양국 관계를 조망하려는 용기였다. 호류지의 목재들이 서로를 맞물려 거대한 탑을 이루듯, 한반도의 혁신 역량과 일본의 정교한 장인정신이 다시 결합할 때 동아시아는 세계 기술 지형의 중심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단순히 물질적인 성취가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지혜와 열망이 응축된 문화적 산물이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오늘날 일구어낸 반도체의 기적은 천 년 후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호류지로 기억될 것인가. 그 답은 기술의 우위를 넘어, 그 기술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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