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이별도 통역이 되나요

일본의 Good Bye Bye vs 한국의 Good Good Bye

by KOSAKA

오사카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평소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떠날 채비를 마친 이의 눈에 서린 서글픔 때문일 것입니다. 수년간 정들었던 거리를 뒤로하고 다시 고국으로 향하는 이 시점, 제 귓가에는 두 곡의 노래가 교차하며 흐릅니다.


일본의 ‘Good Bye-Bye’와 한국의 ‘Good Good Bye’. 제목부터 닮아 있는 이 두 노래는 이별이라는 보편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의 결은 현격히 다릅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이별을 대하고 수용하는 두 나라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정서적 지형도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먼저 일본의 ‘Good Bye-Bye’를 들어봅니다. 이 곡에서 느껴지는 첫인상은 '정돈된 단념'입니다. 일본 특유의 ‘모노노 아와레(물의 가련함)’, 즉 영원한 것은 없으며 지는 꽃이 아름답다는 허무의 미학이 이별의 순간에도 투영되어 있습니다.


노래 속 주인공은 이별을 마주했을 때 격렬하게 저항하거나 상대의 옷소매를 붙잡지 않습니다. 대신 “바이바이”라는 반복적인 언어를 통해 스스로에게 이별을 주입시키고, 감정의 파동을 억제하며 관계의 종말을 담담하게 수용하려 애씁니다.


이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이별의 방식에도 적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상대에게 나의 슬픔이 짐이 되지 않도록, 가장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뒷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이 일본식 이별이 가진 예의이자 슬픔을 승화시키는 방식입니다. 이별은 아프지만, 그 아픔조차 하나의 풍경처럼 객관화하여 바라보려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반면 한국의 ‘Good Good Bye’는 전혀 다른 온도를 지닙니다. 여기서 ‘굿(Good)’이라는 단어는 역설적입니다. 좋은 이별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알기에, 차라리 더 처절하게 ‘잘’ 보내주겠다는 의지 혹은 미련의 다른 이름으로 들립니다. 한국적인 정서의 핵심인 ‘한(恨)’과 ‘정(情)’이 이 노래의 밑바닥을 흐릅니다.


한국의 이별 노래는 대개 상대와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는 것에 고통스러워하며, 그 고통을 숨기기보다 밖으로 터뜨립니다. Good Good Bye 속의 감정은 일본의 그것처럼 정돈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엉키고 설킨 실타래처럼 투박하고 뜨겁습니다. 이는 이별을 객관적인 풍경으로 보지 않고, 내 삶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신체적 통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곡의 차이는 ‘거리감’에서 극명하게 갈립니다. 일본의 노래가 상대와 나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 빈 공간을 침묵과 예의로 채운다면, 한국의 노래는 상대와 나를 하나로 묶었던 끈을 억지로 끊어낼 때 발생하는 마찰음에 집중합니다.


일본의 이별이 ‘흩날리는 벚꽃’ 같다면, 한국의 이별은 ‘뿌리째 뽑히는 나무’ 같습니다. 벚꽃은 질 때를 알고 미련 없이 떨어지지만, 나무는 뽑힌 자리에 깊은 구덩이를 남깁니다. 오사카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일본인들이 이별의 순간에 사용하는 “사요나라”라는 단어의 무게였습니다. 그것은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완결된 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우리가 흔히 쓰는 “안녕”은 만날 때와 헤어질 때가 같으며, 헤어짐 속에도 만남의 가능성을 늘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수성의 차이는 아마도 두 나라가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사회와,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 애정이라 믿는 사회의 차이입니다.


Good Bye-Bye’의 담백함은 타인이라는 존재의 불가침성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성숙함일 수 있고, ‘Good Good Bye’의 진득함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절박함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삶의 상실을 견뎌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곧 저의 오사카 생활도 이 두 곡의 노래처럼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짐을 싸고 가구들을 처분하며, 저는 스스로에게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일본식으로 정갈하게 “바이바이”를 고하며 뒷모습을 보일 것인가, 아니면 한국식으로 이 도시에 남겨둔 정과 추억을 아쉬워하며 뜨거운 눈물 섞인 “굿굿바이”를 보낼 것인가. 아마도 저는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배운 ‘단념의 미학’으로 떠남의 슬픔을 다독이면서도, 한국인 특유의 ‘짙은 정’으로 이곳에서의 인연들을 마음속 깊이 새겨갈 테니까요.


이별은 단순히 누군가와 헤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람 혹은 그 장소와 함께했던 나 자신과 작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노래가 이별 후의 고요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한국의 노래는 이별의 폭풍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나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두 노래는 결국 같은 곳을 향합니다. 상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오사카의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이 시간, 저는 이 두 가지 감성을 모두 품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을 상상해 봅니다. 일본의 서늘한 서정과 한국의 뜨거운 서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저의 이별 또한 하나의 완성된 에세이가 되어 남을 것입니다. 떠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토록 다른 두 가지의 아름다운 이별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시간들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방의 지퍼를 닫으며, 나직이 읊조려 봅니다. 안녕, 그리고 사요나라. 나의 오사카, 나의 시간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상] 7세기의 하이테크, 21세기의 국격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