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을 건너온 황금빛 물고기가 우리 주머니 속에서 들려주는 시대의 기록
겨울의 초입,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비릿한 냉기를 품기 시작하면 도심의 골목마다 주황색 천막이 수줍게 고개를 든다.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밀가루 반죽의 구수한 향기와 달콤한 팥 냄새는 그 어떤 화려한 향수보다 강렬하게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우리는 그 정겨운 냄새에 이끌려 주머니 속의 지폐를 만지작거린다. 그곳에는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황금빛 몸매를 뽐내며 누워 있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물고기인 붕어빵이 살고 있다.
이 작은 빵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다 너머 일본의 '타이야키(たい焼き)'를 만나게 된다.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은 '바다의 왕'이라 불리던 도미의 형상을 빌려 고급스러운 과자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 물고기가 현해탄을 건너 1930년대 한반도에 정착했을 때, 그것은 도미가 아닌 붕어의 이름을 얻었다.
당시 우리 민족에게 도미는 평생 몇 번 구경하기 힘든 귀한 물고기였지만, 붕어는 동네 냇가 어디에나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이웃이었기 때문이리라. 도미의 화려함 대신 붕어의 소박함을 선택한 그 변용의 과정은, 외래의 문화를 들여와 우리만의 정서로 녹여낸 한국적 해학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도미가 귀족의 상징이었다면, 붕어빵은 태생부터 철저히 서민의 편에 서 있었다. 오사카의 거리에서 타이야키를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은, 결국 우리가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와 각자의 슬픔과 기쁨에 맞춰 모양을 바꾸어온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붕어빵의 역사는 곧 우리네 살림살이의 거울이기도 하다. '천 원에 다섯 개'라는 공식이 성립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굣길 학생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던 그 넉넉함은 이제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붕어빵의 개수는 줄어들고, 크기는 작아졌으며, 어느덧 천 원 한 장으로는 붕어의 꼬리조차 구경하기 힘든 시대가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치솟은 곡물 가격과 가스비, 인건비는 붕어빵을 '인플레이션의 바로미터'로 만들었다. 이제는 한 마리에 천 원, 혹은 이천 원에 세 마리라는 가격표가 낯설지 않다. 주식 시장의 KOSPI 지수가 경제의 상층부를 대변한다면, 붕어빵 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서민들의 지갑 사정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따뜻한 빵 한 봉지를 사 들고 집으로 향하던 아버지의 어깨가 예전보다 무거워 보이는 것은, 단지 날씨가 추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어빵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생존을 모색해 왔다. 단팥이라는 정통의 경계를 넘어 슈크림이 그 자리를 꿰찼을 때, '팥붕파'와 '슈붕파'라는 세기적 논쟁이 시작되었다. 뒤이어 피자 토핑을 품은 피자 붕어빵, 고구마 앙금이 들어간 고구마 붕어빵, 매콤한 김치가 섞인 붕어빵까지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간식의 변주를 넘어, 변화하는 대중의 입맛에 적응하려는 치열한 생태계적 진화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차가운 붕어빵이나, 찹쌀을 넣어 쫀득함을 극대화한 미니 붕어빵 같은 파생상품들은 이제 편의점과 대형 마트의 냉동 매대까지 점령했다. 노점의 한계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거듭나려는 이 작은 물고기의 몸부림은 가히 눈물겹다. 틀은 그대로이되 속재료를 바꾸어 살아남는 그 유연함이야말로 인류가 오랜 세월 터득해온 생존의 지혜와 닮아 있다.
이제 붕어빵은 한반도의 겨울을 넘어 세계의 바다로 헤엄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K-푸드의 열풍이 떡볶이와 핫도그를 세계인의 입맛에 각인시켰듯, 붕어빵 역시 해외 진출의 잠재력이 충분하다. 이미 뉴욕이나 파리의 거리에서 'Goldfish Bread' 혹은 'Korean Fish Pastry'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붕어빵은 그 귀여운 외형과 달콤한 맛으로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미학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즐거움이다. 특히 채식주의가 강조되는 서구권에서 식물성 단백질인 팥 앙금을 활용한 붕어빵은 건강한 간식으로서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 한국의 겨울을 상징하는 이 따뜻한 감성이 디지털 시대의 차가운 도시인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줄 수 있다면, 붕어빵은 머지않아 글로벌 스트릿 푸드의 당당한 주역이 될 것이다.
붕어빵은 이처럼 단순한 탄수화물의 덩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기억의 매개체이며, 시대의 고난을 함께 견뎌온 동반자다. 머리부터 먹을지 꼬리부터 먹을지를 고민하는 찰나의 즐거움, 봉투 겉면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나누며 시린 손을 녹이던 순간들. 우리는 붕어빵을 사면서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인 점포가 늘어나고 키오스크가 대화의 자리를 대신하는 삭막한 풍경 속에서, 붕어빵 노점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만 완성되는 몇 안 되는 풍경 중 하나다. 반죽을 붓고, 팥을 얹고, 틀을 뒤집는 그 정성스러운 반복 속에 우리네 인생의 굴곡이 녹아 있다. 비록 물가는 오르고 세상은 변해도, 붕어빵의 그 붕어다운 얼굴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도착한 집 거실에서, 봉투 속에 갇혀 김이 서린 붕어빵을 가족들과 나누어 먹는 저녁. 그 소박한 평화가 깨지지 않는 한, 우리네 겨울은 여전히 견딜 만한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황금빛 비늘을 반짝이며 우리 곁으로 찾아온 이 작은 물고기가 건네는 위로는, 사실 그 어떤 거창한 경제 지표나 문학적 수사보다 따스하고 진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