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다시 써보는 내 몸 사용 설명서

by KOSAKA


오사카에서의 생활이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1월말 귀국을 앞두고 주변을 정리하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나는 새해 계획대로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작심삼일은 일단 극복한 셈이다.


몸은 무거웠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으며, 무엇보다 평상시 심박수가 100을 전후하며 내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나를 움직이게 했달까. 사실 이 나이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특히나 내 몸처럼 무거운 엔진을 돌려야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막연한 의지가 아니라, 내 몸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시 써보는 내몸 사용 설명서'를 완성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중년 아저씨의 시작은 늘 그렇듯 ‘장비질’부터였다. 무릎을 보호해줄 최고의 쿠션화라는 아식스 젤 님버스 27을 사고, 내 몸의 실시간 지표를 낱낱이 파헤쳐줄 가민 워치를 손목에 찼다. 사실 시작하기도 전에 수십만 원의 거금을 쓰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중년 아저씨들은 알고 있다. 장비란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퇴로를 차단하는 배수의 진이자 스스로에게 거는 강력한 최면이라는 것을. 가민의 빨간색 시작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게으른 아저씨가 아니라 기록을 가진 러너가 된다는 기분을 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장비는 나에게 '이제는 멈출 수 없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오사카에서의 첫 러닝은 12월 29일이었다. 3.01km를 33분 동안 달렸다. 아니, 달렸다고 하기엔 민망한 ‘슬로우 조깅’이었다. 5분은 아주 천천히 뛰고, 1분은 숨을 고르며 걷는 방식이었다. 가민 워치가 기록한 평균 페이스는 11분 00초. 누군가에게는 걷는 것보다 느린 속도였겠지만, 나에게는 내 몸의 모든 관절이 몸의 하중을 견뎌내며 외치는 비명을 경청하는 고독한 사투였다.


다음 날인 30일에도, 그 다음 날인 31일에도 나는 나갔다. 33분, 36분... 가민에 찍히는 시간은 늘어났고, 러닝화의 푹신한 쿠션은 내 무릎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날카로운 충격을 묵묵히 받아내 주었다. 내 몸이라는 기계를 제대로 돌리기 위한 첫 번째 매뉴얼은 '느려도 좋으니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놀라운 변화는 단 일주일 만에 찾아왔다. 1월 1일 새해 첫날, 나는 6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며 몸을 예열했고, 2일과 3일에는 다시 러닝화를 신었다. 기록을 보니 12월 30일 142였던 평균 심박수가 1월 3일에는 137까지 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일상에서의 변화였다. 평상시 가만히 있어도 100을 전후하던 심박수가 이제는 70대, 80대까지 내려와 안착했다. 가민 워치가 보여주는 그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만 해도 자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뛰던 내 심장이, 이제야 비로소 깊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증거가 숫자 64라는 최저 심박수로 나타났다. 이것은 내가 내 몸의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심장은 무리한 가동을 멈추고 안정을 찾았으며, 나는 내 몸이 보내는 데이터에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의 유산소 역치 심박수(LTHR)는 175라는 것을 알게 됐다. 53세의 나이를 고려하면 꽤 높은 엔진을 가진 셈인데, 이를 기반으로 계산한 나의 존 2 구간, 즉 지방을 태우고 심폐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단련하는 구간은 140에서 150 사이였다. 5분 달리기와 1분 걷기를 반복할 때, 가민 워치는 내가 이 황금 구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손목을 울리며 지도해주었다. 장비질의 보람이 단순히 멋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수치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내가 산 것은 시계와 신발이 아니라, 내 몸이라는 복잡한 기계의 실시간 상태창이었다. 이제 나는 무작정 힘들게 뛰지 않는다. 내 엔진이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RPM을 지키며, 내 몸을 아끼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 나는 아침 달리기가 두렵지 않다. 비록 페이스는 10분대가 넘고, 걸어가는 행인보다 느릴 때도 있지만 상관없다. 내 심장은 이전보다 훨씬 여유롭게 피를 뿜어내고 있고, 내 관절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5분 뛰고 1분 걷는 그 루틴 속에서 나는 내 몸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예전엔 숨이 차면 무작정 멈춰 섰지만, 이제는 가민의 수치를 보며 페이스를 조절하고, 1분의 걷기 시간을 통해 다음 5분을 준비하는 인내를 배운다. 내 몸 사용 설명서의 두 번째 장은 '휴식 또한 훈련의 일부'라는 사실이었다.


귀국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이 오사카의 공기를 더 깊이 마시며 달릴 것이다. 구청에 가서 퇴거 신고를 하고, 사용하던 소형 가전들을 수거함에 버리는 이별의 과정들이 남아있지만, 이 러닝만큼은 한국으로 가져갈 가장 소중한 전유물이 될 것 같다.


아직 감량 목표까지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내 심장을 진정시킨 이 ‘장비질’의 기적을 믿는다. 숫자는 정직하고, 데이터는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내 몸을 귀하게 여기고 투입한 정비 비용과 노력은 반드시 더 건강한 삶이라는 결과로 돌아올 것임을 이제는 확신한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고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심박수는 평온했고, 가민 워치는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중년 아저씨가 오사카 도심을 느릿느릿 달리는 풍경은 아마 타인에게는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손목 위에서 반짝이는 가민의 숫자들과 내 발을 감싸고 있는 님버스의 부드러운 감촉은 내가 어제보다 더 건강한 인간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장비는 충분하다. 이제 남은 것은 1월말 귀국행 비행기를 탈 때, 조금 더 가벼워진 몸과 훨씬 차분해진 심장으로 좌석에 앉는 것뿐이다. 달린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정식으로 마주하고, 잃어버렸던 내 몸 사용 설명서를 한 자 한 자 다시 써 내려가는 위대한 여정이다. 오사카의 마지막 겨울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내 심장이 다시 뛰는 방식을 가르쳐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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