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삼체X: 관상지주

류츠신이 비워둔 억겁의 시간을 채우는 상상력

by KOSAKA

류츠신의 원작 소설과 넷플릭스 시리즈를 다 봤다. 내가 넷플릭스 시리즈와 원작을 다 본 작품은 이 삼체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중국 문화혁명이라는 서슬 퍼런 근현대사에서 시작해 양자역학의 기묘한 세계관을 서사로 끌어들이는 그 대담함, 그리고 SF라는 장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압도적인 스케일까지. 삼체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는 다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체 시리즈 3부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의 기분은 조금 묘했다. 우주가 스스로 차원을 낮추며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그 결말은 너무나도 차갑고 냉정했다. 작가 류츠신이 설계한 우주는 인간의 감정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거대한 기계 장치 같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느꼈던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나 희망은 한낱 먼지처럼 느껴졌다.


특히 뇌만 남겨진 채 우주 밖으로 던져졌던 윈톈밍의 뒷이야기가 늘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바오슈가 쓴 『삼체X: 관상지주』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팬이 쓴 이야기가 원작자의 인정을 받아 공식 출판까지 되었다니, 이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기를 기다려왔던 만큼 번역본 출판 소식은 누구보다 반가웠다.


사실 원작 3부작은 거대한 물리학적 거대 서사였다. 작가는 우주의 냉혹한 '암흑의 숲' 이론을 통해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 도덕과 사랑이 얼마나 무력한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독자는 청신의 선택을 비난했고, 뤄지의 고독한 사투에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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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마음 한쪽은 여전히 허전했다. 윈톈밍이라는 인물이 가진 그 지독한 순애보와, 그가 삼체 함대 안에서 겪었을 그 긴 세월의 고통이 단지 '인류를 위한 암호 전달'이라는 기능적 역할로만 소비되는 게 아쉬웠기 때문이다. 바오슈의 『관상지주』는 바로 그 지점, 류츠신이 의도적으로 비워두었던 윈톈밍의 잃어버린 시간을 아주 세밀하고 성실하게 복원해낸다.


소설은 윈톈밍이 삼체 함대에 포획된 직후부터 시작된다. 원작에서는 짧게 언급되고 지나갔던 삼체인들의 생리와 그들의 사회상이 윈톈밍의 눈을 통해 구체화된다. 뇌만 남은 윈톈밍을 다시 살려내고, 그에게 육체를 만들어주며, 그를 통해 인류를 학습하려 했던 삼체인들의 의도는 지극히 효율적이면서도 기괴하다.


여기서 바오슈는 원작의 하드 SF적 설정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윈톈밍이라는 개인의 내면에 훨씬 더 깊숙이 침잠한다. 삼체인이 만들어낸 가상현실 속에서 윈톈밍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문과 고독, 그리고 그가 청신에게 보냈던 그 복잡한 '세 가지 동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읽다 보면, 원작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관상지주(The Observer)'라는 존재의 등장이다. 이 설정은 삼체 세계관의 기원을 우주적인 신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왜 우주가 '어둠의 숲'이 되었는지, 왜 고차원의 문명들이 서로를 파괴하며 우주의 차원을 스스로 낮추어 왔는지에 대한 바오슈의 상상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10차원의 완벽했던 우주가 어떻게 지금의 3차원 파편으로 전락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하드 SF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유희다. 류츠신이 거시적인 물리학의 법칙으로 우주를 조망했다면, 바오슈는 그 법칙의 배후에 있는 고차원 지성체들의 의지와 투쟁을 그려냄으로써 서사의 구멍을 메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가치는 거대한 설정의 확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거대함 속에 가려져 있던 개인의 구원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원작에서 청신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낙인찍히곤 했다. 하지만 윈톈밍의 시선으로 바라본 청신은 달랐다. 그녀의 자애로움과 도덕적 결벽은 문명의 생존 측면에서는 패배였을지 몰라도, 우주가 지켜야 할 마지막 품격이었다.


윈톈밍은 관상지주로부터 우주의 모든 흥망성쇠를 목격할 기회를 얻지만, 그가 끝내 도달하고자 했던 곳은 거대한 진리가 아니라 청신의 곁이었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단순한 SF를 넘어 지독한 순애보이자 인문학적 에세이가 된다.


아이 AA와 윈톈밍이 청색 행성에서 보냈던 평화로운 시간들에 대한 묘사도 빼놓을 수 없다. 원작에서는 몇 줄의 문장으로만 처리되었던 그들의 삶이 이 책에서는 생생한 온기를 얻는다. 억겁의 세월과 수만 광년의 거리를 뛰어넘어 우주의 운명을 논하는 와중에도, 작가는 결국 "우리가 사랑하고 기억했던 그 순간만큼은 진짜였다"라는 메시지를 얘기한다. 윈톈밍이 뤄지처럼 강인한 투사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가 보여준 집요한 사랑과 관찰의 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구원이었음을 바오슈는 웅변한다.


물론 원작자인 류츠신이 보여주었던 그 서늘한 허무주의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이 지나치게 다정하거나 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모든 수수께끼를 다 풀어서 보여주니 신비로움이 덜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원작에 대한 가장 따뜻한 헌사라고 생각한다. 류츠신이 설계한 차가운 냉동창고에 바오슈가 불을 지피고, 그 안에서 얼어붙어 있던 인간의 감정들을 녹여낸 셈이다. 이 소설 덕분에 우리는 류츠신의 차가운 우주를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삼체X: 관상지주』는 원작의 팬들에게 건네는 하나의 위로다. 종말은 더 이상 끝이 아니며,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데이터로 남아 우주의 다음 순환을 기다린다. 이것이 바로 바오슈가 우리에게 선물한, 시간이 선사하는 가장 위대한 구원일지도 모른다. 삼체 시리즈를 다 보고 헛헛했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 거대한 서사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덮으며 비로소 윈톈밍을, 그리고 청신을 마음 편히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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