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잇는 돌봄의 언어

『카프네(カフネ)』- 2025년 서점대상 수상작

by KOSAKA

『카프네(カフネ)』- 2025년 서점대상 수상작

작가 아베 아키코(阿部暁子)는 1980년 일본 이와테현 출신으로, 2008년 『옥상 보이즈(屋上ボーイズ)』로 제17회 로맨 대상(ロマン大賞)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청소년문학과 일반문학을 넘나들며 『파라스타』, 『금환일식』 등의 작품을 통해 안정적인 문장력과 서정적 감수성을 인정받아왔다.


그녀의 소설은 대체로 ‘소소한 삶의 단면’을 따뜻하게 포착하는 데 능하며, 때로는 인간의 고립감이나 상처, 재생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깊이를 지닌다. 2025년, 아베는 장편소설 『カフネ』로 일본 전국 서점 직원들이 직접 선정하는 ‘서점대상(本屋大賞)’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상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일본 독서계가 지금 어떤 감성과 메시지를 원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아베는 『カフネ』를 통해, 가족의 상실과 돌봄의 윤리를 정갈한 문장과 밀도 있는 인물 심리로 풀어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도쿄 법무국에서 일하는 41세의 공무원 노미야 카오루코다. 그녀는 이혼 후 부모와도 떨어져 지내며 고립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12살 연하의 남동생 하루히코가 병사했다는 소식을 받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이가 소원했던 남매는, 제대로 된 작별조차 나누지 못한 채 이별하게 된다. 하지만 하루히코는 생전, 가사대행 서비스 업체 ‘카프네(Cafuné)’에서 일하던 오노데라 세츠나와 동거하고 있었고, 그의 유언장에는 재산 전부를 세츠나에게 남긴다는 의향과 더불어, “누나와 그녀가 함께 밥을 먹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소원이 적혀 있었다. 하루히코의 장례를 치른 후 카오루코는 세츠나를 찾아간다. 그녀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지만, 하루히코가 사랑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경계심으로 가득 찼던 두 여성은, 세츠나가 카오루코에게 내어준 따뜻한 밥상 앞에서 아주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카프네’는 단순한 가사노동 서비스 회사가 아니다. 직원들은 고객의 집에 방문해 청소와 정리, 식사 준비를 대신해 주며, 때로는 고객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거나, 미처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의 잔여물을 함께 수습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세츠나는 ‘일’을 통해서 인간과 관계를 맺는 법을 알고 있었고, 카오루코는 그런 그녀의 곁에서 처음으로 자신도 사람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된다.


결국 카오루코는 휴직계를 내고, 세츠나의 일을 도와보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도쿄의 다양한 가정들을 방문하며 낯선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고독사 직전의 노인, 육아에 지친 주부, 재택근무에 갇혀 무력감에 빠진 남성들. 이들의 집은 말끔하게 청소되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삶이 한 번쯤 타인의 손길에 들춰지길’ 기대하는 듯한 공기감으로 가득하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음식’이다. 카오루코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던 사람이었지만, 세츠나가 정성껏 만든 된장국, 곤약조림, 미역국, 매실장아찌 등을 접하며 마음을 되찾고, 자신도 조금씩 ‘돌봄의 주체’가 되어간다. 이 작품 속에서 요리는 단순히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거리와 온기를 회복시키는 매개이자, 삶을 재정렬하는 의식과도 같다. 주방에서 냄비 뚜껑을 여는 순간 풍겨오는 향기, 씹을 때마다 울컥하는 감정, 식사 후의 무거운 침묵까지 — 아베는 그 모든 장면을 실감 나게 재현하며 ‘돌봄의 물성’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 작품은 제목부터 매우 상징적이다. ‘Cafuné’는 포르투갈어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행위”를 뜻한다. 말 대신 손끝으로, 설명 대신 터치로 위로를 전하는 이 행위는 작중 인물들의 관계를 대변한다. 특히, 세츠나의 성격은 ‘카프네’라는 단어 자체와 닮아 있다. 그녀는 시끄럽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타인을 지탱하며, 조용히 함께한다. 세츠나와 함께하며 카오루코는 자신도 몰랐던 돌봄의 본능을 발견하고, 한때는 미워했던 동생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동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죄책감은, 이제 타인을 향한 따뜻한 손길로 승화된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고 무너질 수 있지만,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과거와 마주한다. 카오루코는 이혼과 가족과의 거리감, 세츠나는 하루히코를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들여다보고,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은 극적이지 않다. 삶이란 원래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진실을 강요하지 않고, 단지 보여준다. 아무렇지 않은 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묻힌 감정의 층을 하나씩 벗겨내며, 독자에게도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카프네』는 최근 일본 문학에서 주목받고 있는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이라는 테마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사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돌봄이 단지 직업이나 계약이 아닌,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윤리적 선택임을 보여준다. 특히 가사노동을 ‘보이지 않는 일’이 아닌, 존중받아야 할 감정의 노동으로 그려내며 현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또한,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적 연대를 탐색하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가 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청소하며, 함께 머무는 것 — 이런 ‘함께’의 감각은 팬데믹 이후 더욱 간절해진 우리 시대의 정서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정식 번역되지 않았지만, 『カフネ』는 충분히 번역 출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문득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고 싶고, 정리되지 않은 방을 누군가와 함께 정돈하고 싶어진다. 소소한 감정이 진짜 연결로 이어지는 세계.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증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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