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시공간 앞에 선 인간의 딜레마를 묻다

『方舟』- 주간문춘 2022 미스테리 베스트 1위

by KOSAKA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에 밟힌 책이었다. 고립된 공간, 제한된 인물, 타임리미트, 그리고 살인.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긴장 요소들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소설이라는 서평때문이었을까. 일본 미스터리 신예 작가 유키 하루오의 장편소설인 이 책은 서평에 값했다.


데뷔작 『絞首商会』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 두 번째 작품을 통해 단숨에 본격 미스터리 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22년 9월 출간된 이 책은 “週刊文春ミステリーベスト10” 1위, “このミステリーがすごい!”  4위 등 일본 주요 미스터리 랭킹을 휩쓸며 그 문학적 완성도와 대중적 매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이야기의 무대는 산속에 위치한 미완공의 지하 건축물. 주인공 히이라기 슈이치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사촌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고, 우연히 한 가족과 동행하게 된다. 총 9명. 첫날 밤은 무탈하게 지나가지만, 다음 날 새벽 지진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출입구는 바위로 막히고, 지반에 이상이 생겨 지하 공간으로 물이 흘러들기 시작한다. 구조가 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남짓.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그 다음에 찾아온다. 누군가 이 공간 안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 제한된 시간,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만약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면, 나머지는 탈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희생자는 누구여야 하는가? 범인. 그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나머지 모두가 집단 추리를 시작한다.


『方舟』는 밀실 미스터리이자 생존 드라마이며, 동시에 심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한 명의 죽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다’는 전제가 제시되는 순간, 독자는 단순한 살인 사건의 진상을 넘어서 인간의 본성과 판단, 윤리와 생존 본능의 대립에 마주하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이 탐정이나 수사관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등장인물 모두가 동시에 탐정이 되고 용의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트릭이나 알리바이보다는, 인간의 거짓말, 이기심, 그리고 불안이다. 각 인물이 사건을 대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며, 독자는 그 중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 심리의 그늘을 정교하게 묘사하면서도, 독자에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형식적으로도 『方舟』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구조를 따른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고전적 틀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동시대적인 위기감과 심리 묘사를 가미하여 새로운 층위를 만든다. 탈출까지의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남겨진 물자도 부족하다. 물리적인 제약 속에서,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독자는 이들이 범인을 찾는 과정뿐 아니라, 점점 무너져가는 신뢰와 균열을 함께 목격한다. 이 긴박한 전개는 영상미가 떠오를 만큼 생생하게 묘사되며, 읽는 이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단순한 ‘범인 찾기’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는 데 있다. 범인은 누구인가? 누구를 죽여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범인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희생시켜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도덕적 선택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것은 등장인물만이 아니다. 바로 독자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히이라기 슈이치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그와 함께 추리하고, 의심하고, 때로는 오판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는, 단순한 장르소설을 넘어선 진정한 ‘문학’의 깊이를 제공한다.


지하 공간의 침수라는 긴박한 설정, ‘범인=희생자’라는 도덕적 딜레마, 그리고 한정된 인원 사이의 복잡한 인간 관계.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方舟』는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선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윤리와 생존 본능, 정의에 대한 시각의 충돌을 예리하게 그려낸다. 결국 이 이야기는 범인을 찾는 이야기이면서도, 독자가 자신 안의 판단과 양심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다.


유우키 하루오의 『方舟』는 일본 미스터리 문학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밀실극의 고전적 재미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깊이 있는 서사. 이러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독자에게 오랜 여운을 남긴다.


정유적 작가의 팬으로서 두 작가를 비교해보면.....유키 하루오는 한정된 밀실 구조 속에서 집단 심리와 도덕적 딜레마를 통해 ‘누가 죽어야 하는가’를 질문하며 독자를 참여형 추리로 이끈다. 반면 정유정은 개인의 내면에 내재된 폭력성과 운명을 직시하게 하며, 한 인간의 선택과 그 파멸을 따라가게 만든다.


전자가 집단의 윤리적 판단을 실험하는 이야기라면, 후자는 개인의 본성과 악의 기원을 해부하는 내면적 스릴러에 가깝다. 양자는 모두 ‘살인’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그것을 통해 들여다보는 인간성과 사회의 풍경은 분명히 다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이런 부분도 미묘하게 달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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