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인터스텔라>

시각화의 정점과 사유의 정점을 연결시키는 이 테크놀로지한 '사색자'의 경

by 우주에부는바람

*2014년 11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가까운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 속 현실은 암울하다.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모래 폭풍으로 그릇을 뒤집어 놓지 않으면 식사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제 학교에서는 달 착륙이 소련으로 하여금 과학기술에 헛돈을 쓰도록 만들기 위한 사기극이었다고 가르치며 군대는 해체되었고 뉴욕 양키스는 동네 야구 수준으로 동네 야구 수준의 경기자에서 게임을 한다. 혹독해진 지구 환경으로 이제 사람들은 (영화 속 인물의 말에 의하면) 하늘이 아니라 땅만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엔지니어이자 우주선 조종사였던 쿠퍼 또한 이제는 자신의 기술을 농기계 수리에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믿을 것은 농작물을 키워낼 여력을 가지고 있으며 버텨 줘야 할 땅 덩어리 뿐이다.


하지만 쿠퍼에게는 자신이 사랑하고 지켜주어야 할 딸 머피와 아들 톰이 있다. 계속해서 나빠지기만 하는 지구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삶을 이어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이 하드하기 그지 없는 (어떤 영화 프로그램있더라, 크피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Science Fiction 이 아니라 Science Fact 의 SF 라고 하였다, 하드 SF는 SF 장르중에서도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에 무게를 둔 작품들을 일컫는다.) SF 영화의 가장 앞자리에도 결국은 사랑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그리고 이 사랑은 결국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영화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또 다른 하나는 중력이라고 했던가...)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는 못하지만 믿어보기는 하자구요.”


결국 쿠퍼가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른 은하계로의 탐사를 떠나게 되는 것도 사랑이고, 떠나는 아버지를 만류하는 딸을 움직이는 것도 바로 사랑이다. 또한 쿠퍼와 함께 탐사를 떠난 아멜리아가 자신의 연인인 에드먼즈가 있는 행성으로 향하자고 하는 것도 바로 이 사랑이 의미하는 바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웜홀과 블랙홀, 5차원,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중력이상현상과 이것들을 아우르는 뒤틀린 시공간이라는 여러 과학 이론이나 과학적 사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이 이 과학적인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들 내부에서 아직 사랑의 기제가 작동하기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희가 태어나고 엄마가 했던 말을 아빠는 이해 못했었어. 이렇게 말했지. ‘이제 우린 그저 아이들한테 추억이 되면 돼.’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어.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이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이 사랑이라면 그것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 영화 속 로봇이 아무리 훌륭하게 유머를 구사한다고 하여도, 아무리 적확하게 임무를 완수해낸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사랑과 그로부터 비롯된 욕망을 통하여 불거지는 사건과 사고들이 아니겠는가. (초반 영화 속 머피가 언급하는 유령의 존재를 향하여 비웃음을 흘리던 나, 그러니까 뭐야 놀란이 이렇게 유치한 수작을, 하던 나는 이후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그래서 결국 사랑을 품은 인간의 욕구와 사랑을 향한 믿음은 결국 우리 인간이 세대를 이어가게 만드는 (종말을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될 것이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해요. 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가는 빛에 대해.”


얼마 전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보이후드>를 보고난 후 이 감독이야말로 참 영화내적으로 그리고 영화외적으로 시간을 잘도 컨트롤하는구나, 감탄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의미에서 시간을 조각조각 자르고 붙이고 늘이고 줄이는 능력에 있어서 크리스토퍼 놀란만한 감독이 또 있을까 싶어진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인 영화 <메멘토>와 최근 영화 <인셉션>에서 보여주는 시간의 여러 층위와 그 중첩 등을 이미지화하는 능력을 보라.) 특히나 이번 영화에서 보여주는 웜홀과 웜홀의 내부, 그리고 블랙홀과 블랙홀의 내부에 대한 시각화는 (밀러가 도착하였던 행성에서의 거대한 파도와 만이 기다리고 있던 행성에서의 얼어붙은 구름도...) 경이롭다. 물론 그 경이의 정점에는 블랙홀 속 5차원 그리고 그것에 맞닿아 있는 3차원에 대한 시각화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화의 정점에 이 영화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의 정점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놀란을 어떤 경지에 올라선 감독으로 인정하게끔 만든다. 영화라는 장르가 외형적으로 가지는 시각화의 정점이 영화라는 장르가 간혹 가지고 있기도 하는 사유의 정점과 맞닿아 있다니, 이성의 영역인 과학과 감정의 영역인 사랑이 동시에 구현되다니, 과학 기술을 신봉하던 쿠퍼를 결국 유령으로 만들어버리다니 하지만 그 유령으로 하여금 인류를 구원토록 만들어버리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그들’이 깔아 놓은 멍석, 그 위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은 결국 ‘우리’들 혹은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사랑이라는 사정은 (돌이켜 생각해보니 <메멘토>도 <인셉션>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변하지 않으니, 크리스토퍼 놀란이 ‘테크놀로지’한 사색자가 아니라 테크놀로지한 ‘사색자’로 기억되는 이유가 아닐까...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매튜 맥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맥켄지 포이, 제시카 차스테인 출연 / 169분 / 20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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