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마이클 키튼이 제공하는 '예기치 못한 미덕'에 감읍하며...
*2015년 4월 1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주말이던가, 우리집을 방문했던 연인은 영화가 예술이냐 아니냐를 두고 다퉜음을 내게 알렸다. 아마도 한쪽은 간혹 영화가 던지는 어떤 화두들과 그 상상력을 염두에 두어 예술이라고 했을 것이고, 다른 한쪽은 영화의 태생과 그 오락성을 염두에 두어 예술이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뭐 때로는 예술에 가깝고 때로는 오락에 가깝다 정도로 여기고 있지 않을까 (사실 한때는 나 또한 이러한 구분에 민감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이러한 구분에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영화 버드맨을 떠올렸다. 그러면 버드맨은 예술에 가까울까, 아니면 오락에 가까울까...
버드맨의 주인공으로, 왕년에 히어로물인 영화 버드맨의 주연이었던 (왕년의 <배트맨>이었던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리건에게 아무래도 영화는 (혹은 최소한 자신이 연기했던 영화들은) 오락물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제 시리즈물의 출연을 고사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대중들은 여전히 그를 버드맨으로 기억할 뿐), 리건은 인기의 하락과 함께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 상태이다.
그러한 리건이 이제 연극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 연극은 보다 명백하게 예술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장르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만만치 않다. 공연일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계속 연기가 엉망이어서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남자 배우가 사고를 당해 출연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기사 회생으로 한창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는 마이크(에드워드 노튼)를 출연시킬 수 있게 되지만 그는 리건을 대신해 연극 전체를 장악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가하면 연극 제작에 함께 참여한 리건의 딸 샘(엠마 스톤)은 약물 중독이라는 과거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한 채 대마초를 피우고, 연극에 출연하는 마이크와 그렇고 그런 사이로 진행이 되는 것만 같다. 연극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평가는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물어뜯는 기사를 쓸 것임을 예고하는 것 또한 리건은 불안하고 성가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더욱 리건을 성가시게 하는 것은 바로 버드맨의 목소리이다. 사사건건 리건의 행위에 참견을 하는 버드맨의 목소리는 리건이 혼자 있을 때 종종 등장하면서 그를 점점 신경쇠약 직전으로 몰아간다. 목소리는 리건이 버드맨으로 인기를 누리던 시절, 무비 스타였던 그 시절을 상기시키면서 자꾸 현재와 비교하도록 만든다. “당신은 항상 그래. 사랑과 존경을 혼동하지.” 어쩌면 이혼한 전부인이 등장하여 던진 이 말이 화두일런지도 모른다. 대중의 사랑만을 염원하였다면 그는 버드맨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처럼 시리즈물을 계속해야 옳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제 대중에게 잊혀져 가는 중이다. 그는 다시금 이 연극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고, 자신의 연기 행위가 예술로 존경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연극의 원작 또한 존경받는 소설가인 레이몬드 카버의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어떤 식으로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원작은 어쩌면 영화 속에서 대중들이 배우를 향하여 갖게 되는 감정의 변모를 은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리건은 이 연극을 성공시킴으로써 왕년의 무비 스타였던 자신을 뛰어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왜 항상 사랑을 구걸해야 하지? 난 당신이 원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어. 매일 다른 남자가 되려 애를 쓰며 산다고.” 하지만 연극 속에서 리건이 객석을 항해 던지는 대사처럼 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 하는 회의감은 어절 수 없다.
영화는 실제 배트맨의 주인공이었던 (마이클 키튼은 팀 버튼의 <배트맨1>과 <배트맨2>에서 배트맨이었다) 마이클 키튼을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이처럼 배우의 이력을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는 다른 영화로는 미키 루크의 <레슬링>,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마지막 액션 히어로> 등이 있지 않을까. 찰리 카우프먼의 <존 말코비치 되기>나 실버스타 스텔론의 <엑스펜더스> 등도 비슷하려나...) 그렇게 <버드맨> 은 대중 오락물로서의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 브로드웨이 연극과 헐리우드 영화, 사랑받는 무비 스타와 존경 받는 배우 등등 여러 비교 체험을 권장한다.
무지의 예기치 못한 미덕(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영화 <버드맨>의 부제라고 했던가... 리건의 선택이 (혹은 감독인 이냐루트의 선택이...) 어떤 근원을 가지고 있건 영화는 성공적이다. 리건이 설령 대중의 사랑을 다시 구걸하기 위하여, 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무모하다 싶은 도전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리건과 마이클 키튼과 이냐리투는) 성공했다. 삶은 언제나 끊김없이 계속되고 (영화는 마치 하나의 긴 롱 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우리들이 무지 속에서 진행시킨 무모한 시도는 (그러니까 뛰어내려야 날아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때때로 예상외의 미덕이 되어 우리 삶을 전환시키기도 하는 법이다.
버드맨 (Birdman)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톤,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출연 / 119분 / 2015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