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삶은 평가와 분석의 대상인 시간이 아니라, 이미 의미있는 순간들인
*2014년 11월 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그제 한창훈의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다가 - 아침 여섯시 반.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문 열고 닫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깨어난다는 것. 잠 속에 빠져 있다가 문득 돌아와서 어제 했던 짓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작 이런 것이다... - 이러한 문장들이 들어 있는 261쪽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뭐야, 그러고 보니 삶은 고작 이런 것이었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어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보이후드>를 보았고 - 내 삶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그래서 교수가 되고 치열하게 살면서 너희를 키우고 대학을 보내고, 그리고, 그리고 또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제는... 내 장례식만 기다려야 하는 거야? - 영화 속 메이슨 주니어와 사만다의 엄마인 올리비아의 절규와도 같은 대사를 떠올렸다. 역시, 제아무리 거창하게 열거된다고 해도 삶은 결국 모래처럼 빠져나간 시간으로 휑해진 손바닥 같은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으로 들썩이는 영화를 보기 위해 평일 한낮 한가한 영화관을 찾았다. 여섯 살의 메이슨 주니어가 열 여덟 살의 메이슨이 되어가는, 2002년에서 2013년까지의 기록인 영화는 정확히 그 햇수만큼의 시간이 투여되어 만들어졌다고 했다. 게다가 감독은 비포 시리즈의 리처드 링클레이터이다. 그만큼 영화와 현실의 시간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감독이 있는가...
영화의 시작, 올리비아는 여섯 살의 메이슨 주니어와 사만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이자 이혼한 싱글맘이다. 스물 셋 철부지 같았던 사랑의 결과물인 두 아이에 대한 책임으로 올리비아는 힘들다. 그리고 여섯 살 메이슨 주니어는 그런 엄마를 살핀다. 올리비아가 겪어야만 하는 삶의 힘겨움은, 문틈으로 애인과 싸우는 장면을 바라보는 메이슨 주니어의 시선으로 옮겨진다.
이후 올리비아의 결단,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다시 공부를 하고 보다 나은 직장을 구하고 그래서 아이들을 더 잘 키우고 자신도 성장하리라는 각오로 메이슨 주니어는 이사를 하고, 학교를 옮기고, 두 명의 스텝파더를 겪고, 다시 그들과 헤어지게 된다. 그 사이 이혼과 함께 알래스카로 떠났던 남매의 아버지 메이슨이 돌아오고,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곁에서 또 나름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올리비아는 이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그 사이 하필이면 술꾼인 두 명의 남자와 결혼을 하였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올리비아는 자신만의 힘으로 두 명의 아이를 대학에 보냈다. 메이슨 시니어는 아이들과의 곤고한 유대를 이어가고 있고, 다시 결혼하여 어린 아들을 하나 두고 있다. 그리고 사만다는, 아버지로부터 섹스와 피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민망함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사만다는 어머니로부터 이미 거의 독립한 상태이다.
그리고 메이슨 주니어, 우리의 메이슨은... 과제를 시키기는 하였으나 제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그냥 쌓아 놓기만 하던 메이슨도 이제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도착하였다. 친구를 사귀고 이사와 함께 헤어지고, 양아버지의 횡포에 숨죽이고, 자가용 뒤칸에서 여자 친구와 서툴게 입 맞추고 담배 연기를 주고 받고, 친구의 형이 던진 맥주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고, 누나의 기숙사에서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하고, 대학생과 섹스를 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그리고 졸업을 하였고, 이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가라는 엄마를 뒤로 한 채 이제 막 기숙사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대신 이제 막 만난 친구와 그 친구의 여자 친구와 그 여자 친구의 친구와 함께 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 바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본다.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이들 인물들의 시간이 그다지 지루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니 언제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 거야, 놀라지 않으면 다행이다. 영화는 반복되는 것 같은 삶이라고 투덜대는 당신이지만 이렇게 펼쳐 놓고 보니 조금 다르지 않아, 라고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장례식뿐이라고 눈물 짓는 올리비아의 지나온 시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에 굳이 비관적일 필요도 없다, 고 다독이는 것도 같다.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영화인데, 삶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순간을 붙잡으라는 말이 있잖아.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시간은 영원하잖아, 늘 지금이 순간이 되는 거지.”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씬에 나오는 대사... 우리들이 누린 순간들의 총합이 삶이라고 여기며, 그것이 인생을 바라보는 하나의 현명한 시선이라고 뻐기려 하는 우리를 다시 한 번 전복시킨다. 뭐야 고작 삶은, 혹은 역시 삶이란, 이라고 투덜대는 나 자신 조차도 실은 지금 이 순간에 붙잡혀 있는 것일 뿐, 그러니 이성에 의한 (명백히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우기게 되는) 해석만으로 삶을 바라보려 하지는 말자, 우리들 시간의 총합인 삶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간을 순간순간 살아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보이후드 (Boyhood) /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 엘라 콜트레인, 패트리샤 아퀘트, 에단 호크, 로렐라이 링크레이터 출연 / 165분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