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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박상영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나의 휴식을 떠올리는 것으로 독서의 만족을 대신하는...

  지난 주말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수영장에 다녀왔다. 주말에 하루 입장권을 결제하고 들어갔는데 결제를 하는 직원분이 박상영의 바로 이 책을 읽고 있어 반가웠다. 나는 새벽에 이미 한참동안 달리기를 하고 온 다음이었다. 아내는 다음날의 거리주를 위하여 집에서 휴식을 취하겠다고 하여 혼자 온 참이기도 하였다. 나는 얼른 들어가서 워밍업으로 200미터 정도를 수영한 다음 메인 훈련으로 1800미터를 헤엄쳤다. 100미터 페이스는 2분이 조금 넘었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 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p.15)


  아내와 함께 다녀온 마지막 휴가는 2021년 이른 여름 강릉에서였다. 우리는 전 해에도 경포호와 경포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스카이베이 호텔에서 묵으며 짧은 휴가의 시간을 가졌다. 바다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내를 따라 20층에 있는 인피니트 풀을 주로 이용했다. 실내에 25미터에 모자란 직선 풀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수영을 하지는 않았다. 강릉에 있는 선배 내외와 몇 차례 술자리도 가졌다.


  “내 침대 주변에 무려 세 마리나 되는 그리마(흔히 ‘돈벌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다리가 많은 그 벌레)가 배를 뒤집은 채 죽어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5시 반. 막 동이 트기 시작했고,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고요한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독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과 마치 폭탄을 떨어뜨린 듯 곳곳에 죽어 있는 벌레의 시체들이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아 나는 경미한 공황에 사로잡혔다...” (p.118)


  코로나에 걸린 아버지에게 이상 징후가 발생한 작년 4월 이후 휴가라는 여유의 시간 갖기를 포기하였다. 그 시기 아내와 함께 제주도의 한라산 등반을 계획하였으나 마지막 순간에 비행기편과 숙소를 취소했다. 등반을 위하여 미리 준비했던 탐방 예약도 취소를 해야만 했다. 우리는 성판악 코스로 오를 작정이었는데, 2021년 휴가에서 대관령 옛길에 오른 이후 거의 매주 북한산을 오르며 산행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 아무리 힘겨운 상황에서도 겨자씨만 한 행복이라도 찾아내는 것이 김종미와 M의 특기였다. 김종미와 M의 무한 긍정은 다소 대책 없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조하나와 나는 지독한 현실파에 가까웠다. 우리 넷의 관계가 10년 동안 별 탈 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런 밸런스 때문이 아닐까.” (P.155)


  제주행을 포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픈케어라는 달리기 카페에서 활동하는 아내를 따라 그해 가을 JTBC 마라톤에 도전하는 100일 프로젝트에 발을 들이 밀었다. 넉넉한 휴가의 시간을 포기하는 대신 매주 일요일 새벽, 잠실의 보조경기장과 과천의 관문체육공원과 하남의 종합운동장에 있는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과 올해 봄에 열린 두 개의 마라톤 대회를 완주하였다. 그리고 지난 달 초에는 철인 3종 올림픽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우리는 언제나 편집실에서 동고동락하며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 몇 시간씩 수다를 떨곤 했으니까. 당시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것들을 보고 들었으며, 때로는 뇌를 공유하는 것처럼 같은 생각을 했다...” (p.271)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라는 명명에 사로잡혔으나 그만큼 만족스러운 독서는 아니었다. 명명에 충실한 글들이 부족하였다. 읽으며 그저 나의 휴식에 대해 생각했다. 일을 하는 와중에 그리고 두 분 부모님의 병간호 중에 사용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휴식을 (순도 100퍼센트의) 운동으로 꽉꽉 채웠다. 그리고 이제는 그 운동을 유지하기 위한 휴식까지 생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박상영 /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 인플루엔셜 / 294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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