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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이응준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이별의 내력을 공유하면서 읽는 무르익은 이야기들...

  “...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딜레마에 있다고들 하지만, 딜레마야말로 인생 최고의 맛이다. 딜레마에서야말로 한 인간의 결정력이 드러나기 때문이고, 그 결정에 의해 놓아 버리게 된 것을 통해 오히려 한 인생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놓아 버리는 것이 확실할수록 더 잘 싸울 수 있다. 딜레마가 없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고, 딜레마를 피하는 인생은 비겁한 인생이며, 딜레마 속으로 뛰어드는 인생은 꼭 한 번 살아볼 만한 인생이다...” (p.44)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선택으로부터 제외된 것에 의하여 드러나는 ‘인생의 진면목’을 말하고 있다. 사실 그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을 대부분의 우리는 고통스럽다 여기게 될 터인데, 바로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이 도드라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꽤 한참 동안 내가 직면하였던 딜레마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여러 차례 비겁하였는데, 비겁 또한 인생의 한 면목이니 어쩔 수 없다고 자조한다. 


  “...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이에 학문 따윈 필요 없다. 유기견 보호소에 가 보면 된다. 배신당해 버려진 개들이 인간을 증언하고 있을 것이다.” (p.47)


  이응준의 글을 오랜만에 읽었다. 산문집의 첫 번째 챕터인 <명왕성에서 이별>에는 자신이 기르던 개 토토, 그 토토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후의 토로,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반려견으로 삼은 또 다른 토토가 등장한다. 강아지가 고양이로 그리고 토토가 용이로 바뀌면 이응준의 이별의 내력은 곧 내 이별의 내력이 되고 만다. 2016년에 씌어진 글인데, 나의 용이는 2019년 정초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


  『프랑스 장군이자 훗날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던 샤를르 드 골은 정치인을 많이 알게 될수록 개를 좋아하게 된다고 말했더랬다. 그는 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뭐 뻔하다. 인간들 가운데 가장 쓰레기 같은 것들이 정치인이고 정반대가 개라는 소리였겠지. “사람을 오래 관찰할수록 내가 기르는 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라고 했던 블레즈 파스칼의 말을 독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듯하다.』 (p.61)


  주변에 강아지나 고양이를 반려로 삼은 이들이 여럿 있다. 함께 일하는 P씨의 강아지는 똘망이인데 벌써 열네 살이다. 동생네 고양이 토리는 동생네 고양이 오순이보다 나이는 많지만 항렬로는 한 세대 아래다. 그러니까 토리의 할머니가 오순이의 엄마다. 오랜 후배 L의 고양이 소피는 집 바깥을 갈구하고, L의 또 다른 고양이 하루는 앙칼지며, L의 또다른 고양이 하울이는 가필드를 닮았다.

 

  “...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일제히 묘한 슬픔을 안겨 준다. 다만 나는 속삭이고 싶다.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가 아닌 ‘수필인간(隨筆人間)’이다. 인생과 인간은 시처럼 비장하고 아름답지도, 소설처럼 풍성하고 구조적이지도 않다...” (p.84)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적당한 무게와 속도로 다가온다. 너무 무거운 글들은 이제 내게 사치스럽다. 그런 글들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갑자기 훅 다가서는 글들은 이제 내게 번거롭다. 나는 예전보다 유연성이 떨어지고 피하지 못하면 부딪치자는 결기도 부족해졌다.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적당히 무르익어 있다. 작가와 나는 한 살 터울 동년배인데, 그가 소설가로 등장하였던 잡지가 책장 어딘가에 있다.


  『... 《法句經》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이것은 예전부터 말해온 것이고/ 지금 새삼스레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침묵을 지켜도 비난을 하고/ 말을 많이 해도 비난하며/ 조금만 말해도 비난한다./ 이 세상에서 비난받지 않을 사람은 없다./ 비난만을 받는 사람도/ 칭찬만을 듣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으리라.”』 (p.105)


  말이 되는 이야기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그런 이야기와 매순간 상종하면서 살고 있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반면 자주 상종하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는 드물기도 하거니와 그 드문 이야기조차 나를 피해가기 일쑤다. 이것이 이야기 중독자인 나의 괴로움이다. 잠시 그 괴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이응준 /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 민음사 / 348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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