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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백가흠 《느네 아버지 방에서 운다》

아버지가 던진 말은 선명한데, 뒤돌아보니 거기엔 아무도...

  오늘 낮 병원에 다녀왔다. 면회의 자리에 아버지가 나오셨다. 오랜만이었는데 나와 눈 마주치기를 피하여 엄마의 지청구를 들었다. 엄마는 매주 우리와 만나지만 아버지는 드물게 면회의 자리에 나오신다. 면회의 시간 내내 초점을 잃고 있던 아버지의 눈은 면회가 끝날 즈음이 되어서야 나를 향했다. 무엇 때문인지 갑작스레 아버지의 눈에 울음이 차올랐는데 그만큼이나 급작스럽게 울음이 잦아들었다.  


  『열차는 더디게, 더디게 서울로 향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그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간처럼 다가왔다. 아버지는 내내 내게서 다짐을 받고 싶어 했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자신도 없었다.

  “나도 꼭 네 나이 때 서울로 와서 몇 년을 살았다. 물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낙향했지만 말이다.”

  서울역을 빠져나와 큰아버지 댁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아버지가 말했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살면서 보니 그 아무것이 아무것은 아닌 것 같더라.”』 (p.29)


  부모님이 대전으로 내려가시고 서울에는 동생들과 나만 남아 있을 때였다. 서울에 출장을 왔던 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하루 저녁 주무셨다. 가시방석 같은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 나는 아버지에게 아침상을 차려드렸다. 밥상 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데, 상을 물리고 집을 나서던 아버지가 던진 말은 선명하다. 글을 쓰려거든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글을 써라. 아직 문학청년의 기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십대 후반의 일이다.


  “문학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다. 일상과 정상의 범주 안에 깃든 보편성은 문학에 있어 가장 큰 덕목이라는 말씀. 예전부터 흘러오는 진리, 어머니 말씀 틀린 말 하나도 없다.” (p.59)


  아버지에게 심각한 병증이 시작된 이후 일 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치매가 시작되고 일 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네 가지의 병들 (폐암, 치매, 피부암, 신장투석) 중 피부암은 사라졌다.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이제 오 년째이다. 신장 투석을 시작하고 일 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요양 병원에 들어가신 지는 삼 개월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은 내 지갑에 아버지의 휴대폰은 내 서랍에 있다. 


  “... 역사라는 것은 시간을 한 공간 안에서 지켜온 일이다. 도시 전체가 그렇고 국가 전체가 그런 인식 안에 놓여 있다. 우리의 시선으로는 낡았고 오래됐고, 흉흉해 보이는 그 공간이 그들에겐 가늠할 수 없는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앞으로 남지 않게 될 그 어떤 소중함일지도 모르겠다.” (pp.130~131)


  아버지는 수시로 역정을 내는 사람이었다. 치매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한 차례 내게 역정을 냈다. 그때의 역정이 과거의 역정과 너무 닮아 있어서 나는 혹시 아버지가 치매를 연기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는 평생 아버지를 닮지 않기 위해 애를 썼는데, 무슨 일에도 역정을 내지 않기 위하여 가장 크게 애를 쓴 것 같다.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30세는 죽음을 시작하는 나이이다. 서른이 되면 무슨 큰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고통에 빠지고, 절망의 보편화를 꿈꾸던, 젊은 치기로만 살아가던 때, 20대의 끝이었다. 서른이 되고서는, 30대가 되면 그렇게 어렵게, 몸으로, 시간으로 때우며 마련한 개똥철학을 어떻게든 실현하며 살 줄 알았었다. 적어도, 나는 30대에 내가 마음먹은 대로 살 줄 알았다.” (p.189)


  나는 이제 아버지의 성년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가족 모두의 동의가 있다고 해도 재판이라는 절차가 기다린다. 비어 있는 부모님 댁에 들르면 우두커니 앉아 있는다. 거실 테이블 유리 아래의 어린 손주들과 그들을 보듬는 두 분 부모님을 쳐다본다. 그러고도 한참 꺼져버린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다 돌아 나온다. 젊은 나를 향해 한 마디 던지던 아버지가 거기 없으니 나는 말이 없다.



백가흠 / 느네 아버지 방에서 운다 / 교유서가 / 199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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