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한, 여행기라는 장르의 태생적 한계를 채우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둘 중 한 사람이 가망 없는 병을 가지게 되면 적정한 수준 이상으로는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작정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순간이 오면 저기 티베트 하늘 아래로 떠날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해 놓았다. 그곳에 몸 하나 누일 공간 마련해 놓고 마지막 숨을 내뱉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어쨌든 아내가 결혼을 하면서 내게 부탁한 두 가지 중 하나는 자신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달라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무욕하고 겸손하고 착해 보이기만 하는 이곳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부처와 인간, 성(聖)과 속(俗)이 헷갈렸다. 내가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저 사람들이 바로 부처로 보이고 절 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부처에게 그리도 열렬하게 그리도 겸손하게 갈구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인간적인 욕망을 초극하려고 몸부림치듯이 저들은 주어진 성자 같은 조건을 돌파하려고 몸부림치는 게 아닐까 하고” (p.39)
그러니 이제는 고인이 된 박완서의 티베트와 네팔 여행기에 조금 기대가 컸다고나 할까... 여행기는 생각보다는 심심하였다. (물론 이 책이 출간된 이십여 년 전이라면 조금 생각이 달랐을는지도 모른다. 인도를 통하여 들어가 즐기는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를 손가락으로 짚어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작가의 눈에 사로잡힌, 그리고 함께 동행한 시인 민병일의 렌즈에 포착된 사진들도 이미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일는지 모른다.
“... 식물한계선을 넘은 높이에 있는 이곳 산은 눈을 이고 있지 않으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맨몸이다. 바위도 없이 갈색 흙으로 된 산들이 우기(雨期)에 패인 자국을 주름처럼, 거대한 발가락처럼, 사타구니처럼 드러내고 대책 없이 서 있는 꼴은 황량과 파렴치의 극치이다. 그 낯선 풍경에는 이국적이라는 말도 그 감미로운 울림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 딴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 딴 천체를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아득하고 공포스러운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pp.41~43)
그럼에도 이 휘황한 땅에 대한 이야기가 그저 심드렁한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한 번은 내 눈으로 직접 그 한없는 황량함을 만져볼 꿈을 아예 놓아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체투지의 사람들과 어느 곳에서든 눈으로 확인되는 산 그리고 산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듯 자리 잡고 있을 종교적 장소들을 확인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느리게 시간이 흘러도 여지없이 무너져가고 있을 그곳의 산과 사람들을 생각하면 시간이 속도만큼이나 아쉬움의 몸피도 불어나고 있다.
“... 히말라야에서는 최소한 7,000미터는 넘는 봉우리라야 이름이 붙지 그 이하는 다 무명이 산이라고 하던데, 이 장대한 폭포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몇백 미터짜리 폭포라 해도 하늘에서 거꾸로 뿜어대는 분수 줄기처럼 무수하니 무슨 수로 이름이라도 얻어 가졌겠는가.” (p.232)
여행이 이루어지고 여행기가 집필되는 시기, 이미 스스로의 몸을 노구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작가의 글은 담담한 편이다. 티베트는 첫 번째였지만 네팔은 세 번째 방문이었던 소설가의 심정이 초심자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을 수도 있다. 중국의 자치구 중 하나이며 탄압을 받고 있는 티베트를 향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작가의 마음의 풍경을 보다 삭막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 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pp.343~344)
작가의 노구와 처음이 아닌 방문은 책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네팔 기행기를 부실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이전 두 번의 방문을 기록한 기록물을 수정 보완하여 이번 여행기에 실었을 뿐이다. 티베트 여행 이후 작가는 완전히 지쳐버렸다고 실토한다. 그리고 네팔에 도착했을 때 시작된 우기가 적절한 핑계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여행기라는 장르는 2% 부족이라는 근원적인 한계를 가지는 법, 독자가 직접 그 여행지를 방문하여 부족한 2%를 채워 완성시킬 수밖에...
박완서 / 민병일 사진 / 모독 (冒瀆) / 학고재 / 344쪽 / 1997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