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곧 여행이라는 은유 따위로는 해갈되지 않는 마음을 건너 뛰기 위하여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 수시로 따끔거린다. 정처가 없는 여행 같은 것, 이 당기는 계절이다. 삶이 곧 여행이라는 은유 따위로는 해갈되지 않는 마음으로 촘촘한 밤이다. 이런 밤들에 연달아 여행기를 읽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시인 김혜순의 스페인 여행기이다. 구십 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여행에서 이 시인이 꼭 쥐고 있는 것은 로르까의 예술론에 나오는 ‘두엔데’,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돈 끼호테》이다.
“죽음의 생생함과 상처의 치료를 로르까는 ‘두엔데’라고 부른다. 그것은 수많은 관중을 앞에 놓고 죽음을 연출하고, 그 죽음의 생생함에 박수를 보내는, 방울방울 흙 위에 떨어지는 피를 바라보고 열광하는 투우와, 병들고 불구가 되고 이혼까지 당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생생한 풍자를 자행하는 세르반테스의 《돈 끼호테》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죽음의 치료는 웃음으로밖에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p.18)
시인 로르까의 《두엔데의 이론과 기능》을 읽고 감격에 젖은 적이 있다는 시인은 우리말로 하면 ‘도깨비’와 비슷한 뜻을 갖는 이 단어, 로르까가 ‘스페인 예술의 영혼, 그 영혼이 구현된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두엔데’를 ‘음울한 환희’, ‘죽음의 유희’, ‘고통의 즙, 웃음’, ‘죽음 + 신명’, ‘귀기 어린 신명’으로 번역해낸다. 그리고 스페인을 여행하는 자신에게 ‘돈 끼호테’의 여성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도나 끼호타, 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그리고 판자라고 부르는 자신의 딸과 함께 스페인을 여행한다. 그렇게 도냐 끼호타는 스페인을 여행하는 ‘나’를 쉴새없이 바라본다.
“도냐 끼호타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자신의 그림 속에 자신을 그려넣은 벨라스께스를 본 순간 도냐 끼호타 글 속의 ‘나’를 생각했다. 앞으로 써나갈 글의 주인공으로서의 ‘나’는 어디 서 있는가. 수많은 스페인의 길 위를 걸었던 도냐 끼호타는 길 위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나’를 쉴새없이 봐야 하리.” (p.279)
그렇게 여행의 주체가 되어 있는 도냐 끼호타는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아, 똘레도, 마드리드, 안다루시아 지방, 세고비아를 방문한다. 그러나 도냐 끼호타는 각각의 장소에 치중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글의 말미에 밝히고 있듯 공간을 읽는 일에, 이미지를 읽는 일에 공을 들인다. 그렇게 도냐 끼호타는 (아마도 스페인의 영혼을 담은 이미지를 만들어낸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가 가우디 그리고 화가인 미로, 피카소, 벨라스께스, 고야, 보쉬를 읽어낸다.
“그것은 처음엔 하나의 언어(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다 솟아오르고, 비틀어지면서, 떠다니면서, 하나의 집이 되었을 것이다. 집이 되면서 점점 이야기는 길어졌을 것이다. 어느 계단쯤을 지어 올릴 때에 노래가 솟아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백 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 집을 찾는 이방 사람에게까지 이야기를 들려줬을 것이다. 그 이방 사람이 어느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노래가 솟아오르도록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은 한 인간의 손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세세토록 증거할 것이다. 집 속의 수많은 세부들과 함께. 이야기 속에 수많은 모퉁이와 깨어진 그릇들을 품은 채.” (p.46)
도냐 끼호타의 스페인을 따라 다니다보니 정처 없는 내 마음의 定處가 스페인이어도 좋겠다 싶다. 수은주가 섭씨 50도를 넘어 선다는 스페인의 어떤 거리에서 마음이 끓어 넘쳐도 상관이 없겠다 싶다. 미끌거리는 가우디의 타일 조각 위에서는 금방 증발해버린 마음이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흔적 남기지 않은 그 홀연하고도 원초적인 증발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도냐 끼호타는 이곳 스페인에 와서 자연스러운 사고, 감정, 욕망, 그리고 제도가 가장 좋은 것들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뭐든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 사람의 욕망이 먼저다. 조금 못 살면 어떤가. 인간의 마음이 편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원초적인 생각을 여기 와서 늘 한다.” (p.136)
최수철의 이집트 여행기를 읽으며 그저 삭막하고 뜨겁게만 된 채로 사라지지 않던 마음이 김혜순의 스페인 여행기를 읽으며 조금 갈피를 잡았다. (아니, 그렇다고 여길 작정이다.) 여행은 어쩌면 추문으로 가득한 현실을 건너 뛰기 위한 도움닫기 같은 것, 그러니 제대로 건너 뛰기 위해서는 충분히 도움닫기 하는 것이 좋다. 다음은 박완서의 티베트, 네팔 여행기를 읽을 차례이다.
김혜순 / 들끓는 사랑 / 학고재 / 323쪽 / 1996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