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와 노출의 욕망이 공존하는, 천재의 의외성과 평범한 우리들의...
*2014년 10월 1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영화 《프랭크》를 보고 나온 이대 후문 건너편 필름포럼 극장, 색이 고운 담쟁이가 우거진 큰 벽면을 바라보고 있자, 두 가지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나는 처음 PC 통신에 들어가 kosinski 라는 아이디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나는 후배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아이디를 만들면서 작가 저지 코진스키에서 따와 코진스키를 아이디로 삼았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스키의 일종이냐 농을 걸기도 하였고 코진스키나 코신스키냐 발음을 헷갈려 하면서도 점차 그 코진스키를 나와 동일시해주었다. 나는 코진스키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채로 고스란히 나였은 사람들은 나를 알고 싶어하고는 했다. 나는 코진스키라는 이름 뒤에 숨겨지는 것을 즐겼으나, 동시에 사람들이 코진스키 뒤에 숨겨진 나를 애써 찾으려 한다는 사실도 싫어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통신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한 친구와 나눈 대화이다. 그 친구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자신의 부족한 천재성을 한탄했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이렇게 대꾸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조금 큰 재주를 가지고 있거나 조금 작은 재주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큰 재주를 가지고 있지 못함을 한탄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재주나마 발굴하고 키우는 것이 살아가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뭐 이런 류의 대꾸를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얼굴이 아니라 머리를 통째로 가려버리는 (그러니까 가면이 아니라 탈) 인형탈을 쓴 뮤지션 프랭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꽤나 특이하였다.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뮤지션인 크리스 시비가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사용한 프랭크 사이드버텀이 주인공 캐릭터의 모티프라고 한다. (시나리오의 공동 집필자인 존 론슨가 이 프랭크 사이드버텀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적이 있다고 한다.) 프랭크는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림으로써 스스로를 엄폐한다. (그런데 Frank라는 단어는 숨김없는, 솔직한, 가식이 없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프랭크는 자신이 아니면 발음하기조차 힘든 밴드 소론프르프브스의 리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밴드가 공연차 들렀던 마을에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존이 살고 있다. 자신이 바라보고 부딪치는 모든 것을 음악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어느 날 바닷가에서 우연히 이 밴드와 마주치게 되고, 그들의 공연에 객원 키보디스트로 참여했다가 급기야 앨범 작업에 참여하기 위한 아일랜드 행에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존은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는 프랭크의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이다. 존은 프랭크를 만나기 이전부터 자신의 음악 작업과 관련한 일거수일투족을 트윗으로 올리는 것을 일삼아 해왔다. 존은 이제 그렇게 프랭크와 수행하는 모든 음악 작업을 관계망 서비스에 차곡차곡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볼품없던 존의 SNS에 방문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미국의 락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성과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제 평범하기 그지없는 존과 언제나 의외성으로 무장하고 있는 프랭크 및 그 맴버들 사이의 불화는 점차 파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화는 자기 자신을 커다란 탈로 가려야만 하는 정신적 병증에 시달리면서도 동시에 협업을 해야 하고 대중 앞에 서기도 해야 하는 음악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프랭크 내부의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이며 (“고통이 음악을 만든 게 아니지. 프랭크는 언제나 음악적으로 뛰어난 아이였어. 오히려 고통이 그를 방해했다고 봐.” 라는 프랭크 부모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동시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재능(혹은 관심)을 크게 드러내고자 하는 존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출난 재능(혹은 광기)을 되도록 조심스럽게 즐기려 하였던 프랭크가 만나면서 불거지는 갈등에 대한 (프랭크와의 직접적인 갈등 대신 클라라라는 대리인을 통한 간접적인 갈등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특출난 능력(혹은 평범한 재능)과 특이한 이야기를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마도 (커다란 탈을 쓴 채로도 발군인) 마이클 패스빈더의 연기일 것이다. 우리는 (프랭크가 스스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지만) 탈 안에서 벌어지는 프랭크의 표정을 영화의 어느 순간부터 읽어내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놀라게 된다. (영화 《허》에서 어느 순간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듯이...) 이와 함께 매기 질렌할이 분한 클라라 또한 명백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처음 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여전히 kosinski 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은폐와 노출이라는 이율배반의 욕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친구에게 말한 작은 재능의 발굴이라는 과제 또한 어떠한 성과도 이루어내지 못한 채 여전히 현재 진행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는 나름 (때때로 불안하고 간혹 언짢아도) 잘 살아가고 있다. 영화 속 프랭크는 탈이 벗겨진 채로 옛 동료들에게 돌아가 ‘I love you all, I love you wall’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렇게 당신들을 사랑하면서,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들까지 사랑하면서 앞으로도 잘 살아낼 것이다.
프랭크 (Frank) /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 / 마이클 패스빈더, 돔놀 글리슨, 매기 질렌할 출연 / 95분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