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래서 다행일까...
『남자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라는 단어를 듣고 서른여섯 살이 될 때까지 잊어버리지 않으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허튼 도시괴담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가끔 ‘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를 떠올렸지만 곧 잊어버렸고 언젠간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날은 그의 서른여섯번째 생일이었다. 서른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고 했지. 그가 기억을 되짚었을 때 갑자기 거실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전화를 받았고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잘못 걸린 전화인가 싶어 끊으려고 할 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했다.
“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가 정말 있을까?”』 (p.249)
내게도 ‘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와 같은 것이 있었을까.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그것을 서른 여섯 살이 되기 전에 잊어버렸다. 만약 내가 그것을 서른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면 나 또한 소설 속 미스터 L과 같은 운명에 처했을 수도 있다. 나는 잊어버려서 참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잊어버린 것이 정말 다행일까, 라고 의문을 갖게도 된다.
“사람들은 말이야, 나를 만나면 현실의 존재가 아니라고 자기들 멋대로 결론을 내려. 환상이나 착각 같은 걸로 알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지. 토끼 가면을 쓴 남자를 만났을 리가 없다고 믿어버려. 우리와 헤어지면 우리를 잊어버리려 애쓰다 결국 잊고 말지. 자신을 다시 찾아올 일은 없으리라 믿는 거야. 다른 운 나쁜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어. 하지만 그건 잘못이야. 나는 분명히 존재해.” (p.227)
그러나 나는 소설 속 ‘토끼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는 기억할 수 없었지만 ‘토끼남자’는 기억한다. 심지어 나는 최근 ‘토끼남자’와의 만남을 소설로 쓰려 하기까지 했다. 내가 만난 ‘토끼남자’는 바로 어린 시절 내 책상 아래의 구멍 아래에서 만났다. 나는 그 기억을 되살려 사무실 내 책상 아래의 구멍 아래에서 만난 ‘토끼남자’에 대해 쓰려는 참이었다.
“독특하군. 자네는 독특한 사람이야. 자네의 인생만 해도 그래. 디저트 월드 사람들의 인생은 펼쳐져 있지. 하지만 자네의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인생과 다르군. 이리저리 접혀 있어. 나와 비슷해.” (pp.24~25)
하지만 소설 속 미스터 L은 이러한 토끼남자를 매해 할로윈이 되면 만난다. L은 디저트 월드인 펼쳐진 우리의 현실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접혀진 저 높은 세계의 토끼남자를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L은 토끼남자를 만나면 맛있는 디저트를 대접하고 이와 함께 이야기를 하나씩 해야 한다. 그 하루 할로윈 데이의 만남에 의해 남은 364일의 상태가 결정된다. 그 만남이 원활해야 L의 나머지 364일이 잘 접힐 수 있다.
“... 토끼남자는 접혀 있는 부분에만 관심을 가진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 설명할 수 없는 부분, 설명하려고 하면 오히려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 접혀 있는 부분이 아닌, 완전히 설명되는 부분에, 펼쳐진 부분에 토끼남자가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p.27)
그렇게 L은 할로윈에 만난 토끼남자에게 몽블랑, 당근케이크, 마카롱, 자허토르테, 오렌지쿠키, 레드벨벳컵케이크, 라즈베리타르트와 같은 디저트를 대접하였다. 그 사이 파란 옷의 소녀 루비를 만나고 친구 닥터를 디저트 접대 자리에 데리고 가고 가면을 쓰고 높은 세계에 올라가 안경토끼를 만난다. L은 그렇게 접힌 세계와 펼쳐진 세계 양쪽을 오간다. 디저트 월드의 사람에게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공간만 펼쳐지고 접히는 것이 아니다. 시간 또한 그렇게 주름 잡히거나 활짝 펼쳐진다. 그래서 L은 미래의 자신을 볼 수도 있고 심지어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시간도 접혀 있어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있죠. 앞으로 일어날 일이 과거에 먼저 일어날 때도 있어요. 보통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 미래에 영향을 주지만 높은 곳에서는 그 반대도 가능해요. 그리고 그것들이 한꺼번에 보이기도 해요.” (p.102)
《디저트 월드》는 일종의 환상 소설이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류의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이것이 현대적으로 변종된 도시괴담류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다가 예전에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L이 만난 ‘토끼남자’가 낯설지 않았다. ‘토끼남자’가 그렇게 찾아 헤매는 ‘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를 기억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기억의 원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헷갈린다. ‘생선어두운가시고양이’를 떠올리지 못해서 지금 나는 정말 다행스러운가...
김이환 / 디저트 월드 / 문학과지성사 / 267쪽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