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등장하였다가 스르르 제 별로 향하는 외계인처럼, 그저 농담같은.
*2014년 11월 1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어라, ‘열린책들’에서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라니, 오호, 빼빼로라면 빼빼로 데이의 그 빼빼로일텐데, 가만, 얼마 안 있으면 바로 빼빼로 데이잖아... 구매하기에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게다가 저자는 박진규라는 이름으로, 《수상한 식모들》이라는 작품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후 세 권의 소설을 더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 이름을 버리고 박생강이라는 필명으로 (이 또한 거창한 작명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생강이 몸에 좋다는 어떤 건강 서적의 표지를 서점에서 보고 충동적으로 정했다’고 한다.)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나는 얼마 전 구입하였지만 읽지 않고 아껴 놓았던 소설을 어제, 빼빼로 데이에 맞춰 집어들었다, 그런데, 소설의 첫 부분에서 이미 스멀스멀 불안한 기운이 (심리 상담사에게 말을 걸고 있는 알약들이라니) 피어올랐다고나 할까... 그나마 소설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빼빼로포비아, 그러니까 빼빼로를 두려워하는 남자, 라는 설정에 호기심이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의 초반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심리 상담사에 민형기에 의하면 ‘빼빼로의 초코에서 인간의 배설물을 연상하고’, ‘무리 지어 있는 빼빼로에서 인간 세계에 널리 퍼진 자질구레한 오지랖’이 싫어져서, ‘초코 묻은 빼빼로는 피 묻은 칼을 떠오르게’ 하여 애초에 가지고 있던 인간 혐오에 대한 증상이 증폭되는 탓에 빼빼로를 싫어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부분까지는 그래도 근근히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빼빼로포비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액자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또다른 보편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애초에 빼빼로포비아 이야기는 초반 이후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 김만철이 현재 쓰고 있는 소설에 해당한다는 것인데, 이 두 부분의 이음새가 워낙 거칠다. 양쪽 이야기가 빼빼로와 빼빼로를 닮은 스틱 과자, 그리고 빼빼로포비아와 그 실제 모델인 카페 사장의 미스터리라는 연결점을 갖고는 있지만 아귀가 제대로 맞지 않아 덜컹거리는 문짝 같다.
“남자 친구는 여자 친구를 안아 보고 싶다는 말 대신에 빼빼로를 선물하죠. 여자 친구는 남자에게 잘 좀 하지? 라는 말 대신에 빼빼로를 선물해요... 나 같은 솔로는 자신의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 빼빼로데이를 빈정대죠. 언론인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만만한 안줏감을 찾아 빼빼로데이를 비난해요. 핑계와 핑계가 풍선처럼 부풀면서 거대한 빼빼로 데이를 만들었죠... 그건 그냥 농담 같은 막대 과자예요.” (pp.242~243)
그러니 소설의 말미, 느닷없이 빼빼로와 빼빼로 데이에 대한 작가의 품평 또한 어딘지 갑작스럽다. 한술 더 떠 작가는 ‘어쩌면 21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빼빼로」가 아닐까? 빼빼로라는 소설이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아닐까?’ 라고 반문하는데, 이 또한 빼빼로 데이를 향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비만 같아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야말로 '농담 같은’ 소설이었다고 해야겠다.
박생강 /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 열린책들 / 250쪽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