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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리들 일상의 관계들, 그 사이를 향한 이 작가의 섬세한 틈입...

by 우주에부는바람

「담요」

작가의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친구인 한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장에 대한 이야기를 집어 넣은 『난 리즈도 떠날 거야』라는 소설을 쓴 나는 그러나 이 때문에 친구인 한과 절교를 하게 되었다. 얼마 후 한은 죽었고 나는 한의 장례식장에서 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여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장을 만나 장으로부터 직접 장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내가 죽은 이후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던 파출소장 장은 어느 날 아들이 좋아하는 락 밴드인 PARCEL의 공연장에 함께 가지만 그만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된다. 그 후 장은 아들을 위하여 공연장에 가져갔던 담요를 내내 가지고 다니게 된다. 그러니까 소설은 바로 그 담요의 이야기이자, 그 담요를 가지고 다녀야 했고 어느 날 어린 부부에게 그 담요를 전달해야만 했던 장의 이야기이다.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야기이자, 작가가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들의 시초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비록 등단 전에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폭우」

시력을 읽은 남편과 그런 남편을 건사하고 있는 아내,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를 둔 강사 남편과 그의 아내라는 두 부부의 이야기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전형적인 부부 관계, 그 관계에 묘한 균열을 일으키고 그 끄트머리를 조금씩 부서뜨리는 것 같은 섬세한 손놀림이 소설에서 느껴진다. 어느 순간 두 부부의 이야기가 스리슬쩍 만나게 된다는 설정도, 이 이야기들의 보이지 않는 배경이 되는 미스터 장이 운영하는 고메 식당이라는 공간도 마음에 든다.


「침묵」

일본 포르노 번역을 하다 금주센터에 자원봉사를 하던 여자와 그 금주센터에 스스로 들어가 치료를 하였던 남자가 만나 결혼을 했다 “... 그녀는 가가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고 믿었고, 그 역시 그녀가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모두 구원받는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고 믿었다...” (p.67)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여자는 그만두었던 일본 포르노 번역을 다시 하고 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삐걱거리며 부부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세일즈맨이 들어선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변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세일즈맨의 어수룩한 상품 소개가 이어지는데...


「그들에게 린디합을」

<댄스, 댄스, 댄스>라는 댄스 다큐멘터리를 만든 길감독, 그리고 개봉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한 이 영화와 길감독의 죽음 이후 주목을 받기 시작한 길감독의 영화 세계... 그리고 그 <댄스, 댄스, 댄스>의 후반 작업을 도왔고, 이후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영화를 연출한 문정우... 길감독과 길감독의 아내 그리고 문정우로 이어지는 관계의 모호함과 이들의 영화 세계를 향한 평론가들의 모호한 평가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여러 형태의 관계 그러니까 부부, 가족, 이성 등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천착...


「여자들의 세상」

결혼한 지 오 년이 된 부부... 아내는 결혼 이후 멈췄던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게 되고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공연을 부탁하기 위해 남편은 옛 연인과 만나게 된다. 생기지 않는 아이, 접혀진 꿈, 과거와 현재,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질투 등이 뒤섞인 채 이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


「육 인용 식탁」

“나는 문득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는 지금 어디 있을까? 언제부터 일행에서 사라진 거지? 점심을 먹을 때까지는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내는 어디에 간 걸까?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어디에 있는 거야? 아니, 그럼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 (p.158) 서로 아는 사이인 세 쌍의 부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는데 터져 나온 얼마 전 야유회에서 벌어졌다는 사건... 그러니까 이 중 한 부부의 남편이 다른 부부의 아내와 키스를 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남자는 억울하다... 그 남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 그럼에도 아내는 자신을 몰아 세우고, 그 상대였다는 친구의 아내는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인다... 도대체 왜?


「과학자의 사랑」

미국의 과학자인 고든 굴드의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라고 하는데, 구글 검색을 하니 레이저를 발명한 과학자로 나온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촉망받는 학생은 아니었떤 고든 굴드가 연상의 부잣집 여인을 만나고 그와 결혼을 하고 그녀의 아들을 키우고 그러다 교통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와중에 유모인 에밀리 로즈와의 관계를 오해받아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소설 속 고든 굴드가 해결하지 못했던 백억분의 일이라는 오차, 중력에 저항하는 지역이라는 ‘고든 굴드의 트라이앵글’이라는 개념이 재미있다...


「달콤한 잠 - 팽 이야기」

함께 살고 있는 팽과 정호의 집에 영국 유학시절 알고 지내던 윌리엄이 방문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에 앞서 결혼한 정호의 여동생 수지가 들이닥친다. 팽은 그 상황이 못마땅하다. 결국 팽과 정호와 윌리엄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밖으로 나오지만 정호는 수지가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모르고, 팽은 윌리엄을 통해 영국의 스트립 댄서인 안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애드벌룬」

「담요」와 함께 짝을 이루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애드벌룬」에 등장하는 장의 아들은 죽지 않았다. 장과 그의 아들도 락 밴드 PARCEL의 공연장에 갔고 사고가 있었지만 살아남았다. 장의 아들인 나는 유학을 다녀왔고 한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 소설의 제목은 『난 리즈도 떠날 거야』이다. 그리고 나는 애드벌룬을 닮아 있는, 중력을 거스른 물체를 보게 된다...


작가는 꽤나 천연덕스럽다. 존재하지 않는 소설이나 락 밴드 혹은 유명인을 스스럼없이 만들어내고 활용한다. (당신은 이 작가의 소설을 읽는 동안 자꾸 인터넷을 열어 검색을 하게끔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천연덕스러움이 소설의 가벼움으로 이어지고 있지도 않다. 대신 작가는 자신의 특기를 잘 활용하여 우리들 일상의 명확하지 않은 균열에 손을 갖다 댄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그것을 벌려 나간다. 그 벌어짐이 어떤 방식으로 뻗어나갈 것인지 궁금하다.



손보미 / 그들에게 린다합을 / 문학동네 / 267쪽 / 20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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