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중혁 《메이드 인 공장》

공장과 우리들 사이에 조그만 구멍을 내고, '공장 공포증'의 어깨 너머로

by 우주에부는바람

제지 공장, 콘돔 공장, 브래지어 공장, 간장 공장, 가방 공장, 지구본 공장, 초콜릿 공장, 도자기 공장, 엘피 공장, 악기 공장, 대장간, 화장품 공장, 맥주 공장, 라면 공장... 김중혁이 이 책을 통하여 들른 공장들의 면면이다. 여기에 자기 스스로를 하나의 공장으로 만들었으니, 이름하여 김중혁의 글 공장... 《메이드 인 공장》은 이렇게 열 네 개의 진짜 공장과 한 개의 가짜 공장에 대한 산책기로 이루어진 김중혁의 산문집이다. (그리고 이 글들은 <한겨레> 신문에 일년 동안 연재되었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김중혁은 어린 시절의 ‘공장 공포증’을 이야기하는데, 동년배인 우리들에게는 흔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공부 안 하면 공장 간다, 라는 말은 그러니까 요즘 애들에게 공 안 하면 못 생긴 애랑 살게 된다, 라는 학급 표어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 그러고보니 공부 안 하면 공장 간다, 라는 말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학급 표어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런지도 모른다.) 사실 예전에도 그리고 요즘도 여전히 공장에서의 노동에 (육체 노동이라고 할만한) 대한 편견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지되고 있으니 말이다.


“... 일단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면 종이에다 적고, 종이에 적은 걸 고쳐가면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오랫동안 거쳐온 사람으로서, 종이가 없는 삶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종이를 낭비하면서 생각을 발전시킬 것인가, 생각을 낭비하면서 종이를 절약할 것인가. 딜레마다.” (p.19)


그러니까 글들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서, 라고 하면 오버일 테고, 그저 어린 시절의 ‘공장 공포증’과 이후 굳어진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우리가 등한시하고 있던 공장을 한 번 부드럽게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자는 취지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재기와 상상력으로 가득한 소설가를 필자로 섭외했을 터이고, 그러한 섭외 의도에 소설가 김중혁은 (게다가 일러스트에도 재주가 있는 작가가 직접 삽화도 그려넣고 있다) 잘 부합하고 있다.


“... 지구본이 불티나게 팔리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렇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리비아 내전이 일어났을 때, 지구본이 팔린다. 이라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리비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지구본을 사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 나라의 위치를 가르치기 위해 지구본을 사는 것이다...” (p.107)


의도가 그러하니 작가가 둘러보는 공장들도 꽤나 구미가 당기는 곳들이다. 콘돔 공장이나 브래지어 공장과 같은 곳은 왠지 그 제조 물품의 이름만 들어도 그 공자엥 들른다는 사실에 살짝 들뜨지 않겠는가... 지구본 공장이나 엘피 공장, 초콜릿 공장이나 라면 공장 같은 곳 또한 일반인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공장이라고 할 수 있겠고 말이다. 이처럼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공장 선정 탓에 책의 부제에는 일견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공장’이라는 단어 뒤로 ‘산책기’라는 여유로운 단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게 되었다.


“... ‘허영’이라는 말은 문화나 예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허영’은 필요 이상의 겉치레란 뜻인데, 문화와 예술에는 애당초 필요라는 게 없으며 겉치레를 계속하다 보면 겉이 속으로 변하는 순간이 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p.184)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공장의 면면들이 산책기라는 이름으로 연성화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김중혁의 시선 덕분일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을 다루고 있는 산문집 《공항에서 일주일을》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희화화를 포함하여 자신의 호기심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마구잡이로 뒤섞어가며 작가는 넓은 공장과 그 공장의 사람들 사이를 종횡무진 하고 있다.


공장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딱딱하게 고정되어 있는 사고가 금세 말랑해지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우리가 여러 공장의 메커니즘을 알아채는 것도 불가능하다. (책 내부에서 공장의 시스템이 자세히 언급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읽어낼 수도 없겠지. 공장은 그렇게 쉽게 속내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책을 통하여 이러한 공장들과 우리 사이의 벽에 조그만 구멍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혹여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결례일지도 모르겠으나...)



김중혁 / 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압체적인 공장 산책기 / 한겨레출판 / 245쪽 / 2014 (2014)



ps. 글을 읽다가 어떤 문투에서 문득... 제일 많이 생산되는 브래지어 치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아, 그전에 브래지어를 만드는 과정부터 살펴보자. 결과 발표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적고 있다거나, 뭔가 일차원적인 개그를 적어 내고 있다가 ‘아, 이런 개그 죄송합니다.’라며 괄호 안의 막을 쓰는 것에서는 왠지 기타노 다케시의 산문 어투를 떠올렸다. 그런가 하면 ‘남자라면 누구나 말 못할 팬티의 추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나도 하나 있는데, 누구에게도 말 못할 추억이라서 말은 못하겠고, 모든 남자들에게 팬티가 성장의 상징이듯 나 역시 수많은 팬티와 함께 성장했다는 정도만 밝혀야겠다.’ 라는 곳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 어투를 떠올리게 되었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창훈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