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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펄펄 뛰는 횟감과 그 횟감을 감칠맛 삼아 소소하게 펼쳐진...

by 우주에부는바람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서 제목을 따왔고, 매 챕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산어보》의 구절을 그대로 가지고 오기도 하였다. 정약전 선생이 책을 집필한 것은 흑산도 주변인데 (소설가 김훈은 정약전과 그 주변인물을 얼개로 하여 《흑산》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하였다), 소설가 한창훈은 자신의 고향인 거문도에 8년 전 낙향하여 글 쓰고 섬 근해에서 생활형의 낚시를 하면서 이 산문집을 썼다. (2010년 책의 초판이 출간되었고, 올해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내면서 개정판을 냈다)


“현재까지 알려진 물고기는 대략 2만 5천 종이다. 매년 100여 종이 새롭게 발견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을 것이며 내일 당장 입이 떡 벌어질 기상천외한 종이 나타날지 누가 알겠는가...” (p.288)


모두 서른 종의 어류를 (음... 그런데 인어를 어류라고 할 수 있을까...) 다루고 있다. 대상이 되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갈치(군대어), 삼치(망어), 모자반(해조), 숭어(치어), 문어(장어), 고등어(벽문어), 군소(굴명충), 볼락(박순어), 홍합(담채), 노래미(이어), 병어(편어), 날치(비어), 김(해태), 농어(노어), 붕장어(해대리), 고둥(라), 거북손(오봉호), 미역(해대), 참돔(강항어), 소라(검성라), 돌돔(골도어), 학꽁치(침어), 감성돔(흑어), 성게(율구합), 우럭(검어), 검복(검돈), 톳(토의채), 가자미(소접), 해삼(해삼), 인어(인어)... 그리고 괄호 안은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 실린 명칭이다.


“그물이 좁혀오면 바닥에 딱 붙어 눈치를 살핀다. 그러다 틈이 보이면 졸지에 빠져나간다. 퐁당퐁당, 뛰기도 잘한다. 한번 뛰기 시작하면 보통 다섯 번 정도 한다. 버릇이다. 그러니 숭어와 관련된 말이 많다. 이름도 백 가지가 넘는다. 신화에서 보면 이름이 많으면 능력도 뛰어나고 의미도 다양하다. 아무튼 맛에 관한 것 하나. 숭어 앉았다 떠난 자리 펄만 먹어도 달다, 는 말이 있다. 얼마나 맛있으면.” (p.55)


장편소설 《홍합》에서부터 날 것의 바다 혹은 사람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는 작가가 생선을 다루는 (게다가 이제는 아예 섬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필력은 그 아귀 힘과 함께 짠 내가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상 위에 올라오는 생선류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한 가지 위험한 것은 다뤄지고 있는 것들 중 다수가 횟감이고, 이 작가가 아무래도 술을 좋아하는 것 같아 술자리가 종종 등장하니 읽으면 읽을수록 술 생각이 간절해진다고나 할까...)


“소태처럼 쓴맛이 돌 정도로 간을 해놓아도 훌륭한 반찬이 되는 탓에 만만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고등어에 대해서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안동 사는 안상학 시인은 간고등어가 안동댐에서 난다고 한다. 임하댐에서는 아예 간을 한 채 양식도 한단다. 그럴 리가.” (p.79)


간간히 등장하는 지인들과의 허세 가득한 대거리들을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심심치 않게 다뤄지는 섬사람들의 이야기도 소란스럽지 않고 유머러스해서 좋다. 옛 애인이 찾아온 것을 두고 심란해하던 아주머니가 헤어지고 돌아온 이후 횟집에 고스란히 두고 온 노래미 회를 먼저 아쉬워한다거나 만날 섬을 떠나겠다 협박을 하였던 아낙이 남편이 왔을 때 고대로 집을 지키고 앉아 있는 것도 남편의 손에 들려 있는 또 다른 물고기의 맛 때문이었다는 식이다.


“공동체의 심성은 옆집이 마음에 걸려 차마 고기를 굽지 못했던 것에서 나온다. 먹을 것 없는데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공동체는 촌스러운 것도, 고리타분한 것도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인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p.60~61)


그런가하면 어느 새벽 볼락 낚시를 하러 나갔다가 바위 저편으로부터 들려오는 형제의 이야기나 복국집을 운영하는 아줌마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또 다른 심상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형에게 돈을 융통하여 시작했던 사업을 그만 접은 채 섬에 있는 부모에게 온 동생은 형과 낚시를 하면서 그 힘겨움을 서로 나누고, 복어를 다루는 자격증이 없는 아줌마는 이를 시비 거는 술손님에게 자신이 손질한 복어로 끓인 국을 자식과 함께 백 그릇 넘어 직접 먹었다는 말로 항변을 한다.


“복어는 ‘맛있다’와 ‘위험하다’가 팽팽하게 맞서는, 양극단의 모순을 가진 어류다.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독 중의 독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다른 독을 모두 물리쳐낸다고 한다. 그래서 노인이 대나무 낚싯대로 졸복 낚고 있는 풍경이 만들어진다. 거룩한 한시 한 편 같지만 평생 술로 살아왔다는 소리이다... 다음날 앉은뱅이 냄비에 끓여놓고 먹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보다는 인생 막판에 기사회생,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같이 좀 먹읍시다, 하면 잘못하면 죽는다, 대답한다. 죽을지도 모르면서 잡숴요? 물어보면 이렇게 또 대답한다. 살려고 먹는다.” (p.309)


펄펄 뛰는 횟감과 그 횟감을 감칠맛 삼아 소소하게 나누는 술자리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 산문집이다. 잊고 지내던 우리의 고향의 맛, 과 같은 것으로 흘러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바다 낚시를 좋아한다거나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것들을 즐겨 먹는 이들이라면 더욱 유익하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렇다면 두 가지 중 한 가지쯤에 취미를 붙이고 싶어질 것이니 말이다.



한창훈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문학동네 / 2014 (20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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