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영하 《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내 눈과 타인의 눈, 그 양쪽의 눈으로 보아야 보일 것이니...

by 우주에부는바람

우리는 모두 자신의 눈으로, 만 세상을 본다. 나의 눈을 대신할 수 있는 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눈으로만 본 세상의 편협함을 알기 때문에 때때로 다른 사람의 눈이 포착하고 있는 것 혹은 내가 보지 못한 것을 포착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눈이 향하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나름의 필터링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신화 속 외눈박이 거인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한 이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그 후예들은 원주민의 땅을 차지할 자유를 찾아 총을 들고 서부로 향했다. 메이플라워호의 자유가 정치적 해방으로서의 자유라면 서부로 향한 이들의 자유는 약탈의 권리를 의미한다. 자유가 이렇게 힘의 논리를 포장하는 명분에 불과한 사회에선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적 세계관이 진리가 된다. 초강대국 미국이 걸핏하면 들이대는 가치가 ‘자유’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p.20)


‘보다’라는 제목을 지닌 김영하의 산문을 읽는 일은 그러니까 또 다른 필터를 나의 눈에 장착해보는 일과 같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나는 나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였던 것을 보게 되거나 그저 흐릿한 그 테두리만 확인하던 것을 보다 뚜렷하게 알아챌 수도 있게 된다. 가진 자가 휘두르는 필요 이상의 권력 행위나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자의 일탈 행위에까지 자유라는 이름을 붙이며 방관하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자유관을 김영하의 위와 같은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작업처럼 말이다.


“... 우리의 내면은 자기 안에 자기, 그 안에 또 자기가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이 아니다. 우리의 내면은 언제 틈입해 들어왔는지 모를 타자의 욕망들로 어지럽다. 그래서 늘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이 작은 지옥은.” (p.75)


이러한 ‘보다’라는 컨셉에 맞춘 탓에 이번 산문집에는 영화와 관련한 글들이 (아마도 작가가 씨네 21에 연재한 내용들 중 일부일 것이다) 여러 편 들어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연결지어 자기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 사이를 넘나드는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는 것과 같은 식이다. 이런 식으로 작가는 자신이 본 무언가를 보았다는 행위에 멈춰 세우는 대신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pp.115~116)


소설가인 작가는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보태 우리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각인시킨다. 소설 쓰는 것만큼이나 열심히 전방위적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살피고 또 그것을 토로하는 작가의 산문은 일단 그 자체로 재미있다. 잘 읽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산문은 (김영하를 비롯해 김중혁, 이기호 등의 산문집을 보라...) 대체로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재미의 중간중간 버릴 수 없는 메시지들이 들어 있어 적당히 만족할 수 있다.


“... 이항대립은 문제를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리한 장치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이항대립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한다...” (p.167)


작가는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김영하의 이번 산문집은 ‘보다’를 컨셉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 작가는 삼개월 단위로 ‘읽다’와 ‘말하다’라는 컨셉의 책들을 연거푸 낼 계획이라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쓰는 (생활인으로서의 작가가 보여주는 일상의 모범 사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작가만이 해낼 수 있는 기획일 것이다.



김영하 / 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 문학동네 / 210쪽 / 2014 (2014)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중혁 《메이드 인 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