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굳은 살처럼 생겨나 이제 깎아낼 수 없는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책 자체가 (그러니까 필요 이상으로) 난해하고 지루했다거나 일신상에 변동이 생겨 책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괜스레 읽기를 미루고 미루게 되는 책들이 있다. 왠지 책장을 넘기는 일을 자꾸 미루게 되는데, 그렇다고 이대로 책장을 덮고 다른 책을 끄집어내기는 싫은 그런 묘한 게으름이 발동하는 그런 책들이 있다. 존 폰 뒤펠의 《후베란트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책들 중 하나였다.
“... 에스더는 남편과 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곳에는 셋이 있었다. 요르게, 침묵 그리고 그녀.” (p.61)
“그녀가 필요했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건 그가 매일 아침 새롭게 일깨우는 투지였다. 그는 하루하루를 이 투지로 버텨냈다. 그는 그녀에게만 버림받은 게 아니라 자신의 가장 친한 적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그는 자유로운 게 아니라 버려졌던 것이다.” (p.112)
책을 후베란트가에 속하는 네 사람이 돌아가며 화자로 등장한다. 이 후베란트가의 정점에는 요게르가 있다. 80세 생일을 앞두고 있는 요르게는 독일 출신이지만 아내 에스더와 함께 스페인에 살고 있다. 자식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요르게의 생일을 앞두고 에스더는 독일에서 가족들을 한데 모아 생일 잔치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요르게는 이런 에스더의 계획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저 그는 매일 죽어가는 육체를 움직여 섬까지 수영을 하여 가고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 에스더는 이런 요르게를 남겨두고 그의 생일 파티 준비를 위하여 독일로 향한다.
“... 완고한 성격으로, 고집으로 아버지를 부수어버렸고, 모두를, 토마스와 그의 형제들을, 잃어버린 세대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크리스티안은 예전부터 늘 진짜 적을, 그의 아버지처럼 힘들이지 않고 싸움도 없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진짜로 겨룰 수 있는 적수를 원했다. 크리스티안은 이제 그를 찾았다.” (p.233)
독일에 있는 후베란트가의 집은 현재 요르게와 에스더의 장남인 토마스가 관리를 맡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내 베아테와 거의 이혼한 사이나 다름없고 하나뿐인 아들 크리스티안과도 관계가 썩 좋지 않다. 여기에 에스더는 토마스에게 금전적인 압박을 가하며 아버지인 요르게의 생일 파티 때 인사말을 할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토마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이런 종용을 역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성장기에 아버지인 요르게가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림으로써 아들인 크리스티안과의 관계를 복원코자 하는 것이다.
“... 토마스는 그저 나약한 게 아니라 정말로 완전히 무기력했다. 그는 고통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에게 고통의 의미를 가르치려고 체계적으로 노력했다. 고통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고, 유일한 그의 재능이었고,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토마스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그저 고통스러워만 했다... 토마스는 고통이 주는 모든 것에서 한 가지 반응만 보였다. 도피. 그는 마침내 그의 아버지로부터도 도망쳤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났고,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겪었어도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pp.248~249)
소설은 그러니까 요르게에서 토마스로, 그리고 토마스에서 크리스티안으로 이어지는 삼대의 관계를 그리는 일종의 가족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몰락한 귀족 가문의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요르게는 어린 시절 성직자가 관리하는 기숙학교에 머물며 고통과 소통하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그는 아들인 토마스 또한 그러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럴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고 결국 도망치듯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요르게가 그런 것과는 정반대로 아들인 크리스티안에게는 최소한의 관여만을 했다. 요르게가 토마스에게 최대한 관여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 느꼈던 것처럼, 토마스는 크리스티안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크리스티안은 토마스의 무관여를 무관심 혹은 무기력으로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 가족은 그냥 이렇게 사멸하는 게 최선일지도 몰랐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끼어드는 할머니, 무분별한 여성 편력 외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아버지, 세상을 개선하겠다는 야욕에 불타 주변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어머니... 아마도 요르게는 가족 가운데 다음 세대 그리고 그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은 유일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래서도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p.307)
커다란 비밀이 숨겨진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좀더 빠르게 책을 읽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가족의 역사를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이들을 둘러싼 일들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주 많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된 것들이어서 그것을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들 가족 구성원들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이 가족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요르게 또한 어머니가 자신을 찾아와 사라진 아버지를 욕하였던 어느 날을 기점으로 하여 현재의 요르게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가족의 맨 아래에 있는 크리스티안의 동거녀인 리카르다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 또한 그 시작은 그날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크게 주안점을 두지 않는 대신 소설은 이들의 심리 묘사에는 꽤 공을 들이고 있다. (작가는 아마도 극작가로 더 많이 활동하고 있는 듯한데, 이러한 영향이 소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보여진다) 이 치밀함을 통하여 독자들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어떠한 마음의 상태, 그 상태를 비롯되도록 만든 과거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읽는 일이 이토록 더뎠던 것이리라.
존 폰 뒤펠 / 전옥례 역 / 후베란트가家 사람들 (Houwelandt) / 들녘 / 358쪽 / 2006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