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성건성 갈피를 잡지 않고 써내려간 글들로 추억하는 1980년대...
1982년에서 1986년까지 하루키가 (그러니까 삼십대 중반에) <스포츠 그래픽 넘버>라는 잡지에 연재한 글 모음집이다. 일종의 기획된 연재물인데 글도 그렇고 기획 내용도 그렇고 꽤나 심플하다. 그러니까 잡지사에서 하루키에게 <에스콰이어>, <뉴요커>, <라이프>, <피플>, <뉴욕>, <롤링스톤> 등의 잡지와 <뉴욕타임스> 일요판을 보내주고, 하루키가 이 중 재미있는 기사를 골라서 자신이 생각 약간을 보태거나 말거나 하여 정리해서 쓰면 끝인 기획이다. (책 제목 그대로 일종의 스크랩 글인 셈이다.)
『칼토하르 마을은 이 피카소 벽화 덕분에 완전히 유명해졌지만, 마을 노인들은 거기에 대해 적잖이 넌덜머리를 내고 있다. “주말이 되면 타지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와. 매일 넉 대 씩이나 차가 들어와서 위험해 죽겠어”라는 것이다. 이런 마을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 (p.6)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라이프>지를 봤더니 칼토하르라는 스페인 마을이실려있다. 인구는 이백칠 명이고 전화도 마을 전체에 하나밖에 없는 작은 마을인데 유명 잡지에 사진이 실린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 마을 사람들이 소일거리 삼아서 마을의 벽에 피카소의 명화를 빼곡하게 그렸다. 그저 피카소 탄생 백주년을 맞아 마을의 누군가가 한 번 해볼래, 하고 제안을 하고 마을 사람들이 그러자, 하고 맞장구를 쳐서 이루어진 일인데, 그 결과물이 아주 그럴싸했던 것이다. 그러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위에 옮긴 것처럼 이 유명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대응 방식이랄까...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현대와 같은 정보 과밀 사회에서 모든 명성은 근본적으로 과대평가라고 생각한다. 과소평가의 개념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소평가라고 주목받는 것 자체가 이미 과대평가이다. 어려운 세상이다.” (pp.129~130)
이런 식으로 80년대에 가장 핫한 서구의 잡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주욱 읽어가며 왠지 빈둥거리는 듯한 느낌의 (실제의 하루키는 아무래도 조금 다를 것 같지만, 산문에서 보여지는 하루키는 어딘가 어리숙하지는 않은 느슨함으로 가득하다) 하루키가 자신의 생각을 양념처럼 한두 줄 첨가한 글들이 팔십 여 편 실려 있다. 쭈욱 읽을 필요도 없고, 그저 화장실에 잡지를 몇 권 구비해 놓듯이 가져다 놓고, 군데군데 읽으면 되지 않을까...
“운석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한 가지는 그 온도다. 지상에 막 떨어진 운석은 뜨겁고 연기가 풀풀 날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그것은 아주 차갑다. 어쨌든 그것은 몇백만 년 동안 영하 200도에서 냉동되었던 것이니, 그렇게 쉽게 뜨거워지거나 하지 않는다...” (p.222)
여기에 도쿄 디즈니랜드의 개장 즈음에 도쿄 디즈니랜드를 경험한 글이 한 편, LA올림픽이 열리던 기간에 맞춰 올림픽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글이 한 편 추가로 실려 있다. 산문에서만큼은 한껏 자신을 풀어 헤치는 하루키 특유의 건성건성 갈피를 잡지 않고 써내려간 글들인데 이것들이 어느 정도 유니크하다. 써야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을 딱히 가리지 않는 대범한 산문이라고 하면 오버인 듯도 하고...
“아침부터 줄곧 소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장편소설입니다)을 쓰다가 오후 3시가 지나니 갑자기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져서, 시내에 나가 영화를 보기로 했다...” (p.262)
그래도 문득 그 올림픽 기간의 사적인 기록을 읽다가 위의 문장에서 입꼬리를 올리게 된다. (아마도 《상실의 시대》와 《양을 쫓는 모험》 다음쯤에 읽었을) 이 책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하루키는 LA 올림픽이 열리던 기간의 도쿄에서 썼구나, 그 소설을 쓰다가 문득 모든 게 지겨워져서 시내로 나가 영화를 봤구나, 하면서... 80년대말과 90년대초 이제 막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가 엄숙한 모더니즘과 딱딱한 리얼리즘으로 가득하던 그때 그 시절의 우리를 침공하였던 것이 떠올랐다고나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 / 권남희 역 / 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 비체 / 287쪽 / 2014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