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이지는 않아도 탄탄한 스토리, 적당히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장
『제니가 말했다. “자, 당신은 많이 배웠으니까 알 거야. 인생이 뭔지 어디 말해봐.” 내가 대답했다. “인생이란 우주를 향해 뻗어나가던 햇살이 잠시 머무는 것이지.” 내가 뭐라고 덧붙이기 전에 종업원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닫을 시간입니다!”』 (p.8)
소설의 첫 문장이 이채롭다. ‘우주를 향해 뻗어나가던 햇살이 잠시 머무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남자라니, 이런 남자라면 그 외모나 태도나 현실적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사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문 닫을 시간’이라고 외치는 웨이터의 말소리가 우주 구름처럼 끼어든다. 그러니까 소설은 어떤 로맨스로 이어질 리가 없다. 곧이어 이어지는 이 남녀의 실랑이를 보면 더욱 그렇다.
소설은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인 제니와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낸 유부남 토마스가 집으로 가겠다는 제니를 설득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연구소의 실험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토마스와 도서관에서 일 하는 자유분방한 여인 제니는 실랑이를 거듭하지만 결국 제니는 토마스를 떨군 채 집으로 향한다. 방사선 모양으로 길이 난 암스테르담에서 토마스는 그녀를 앞질러 그녀의 집까지 갈 작정을 한다.
네델란드 소설은 아마도 처음이다. 장르는 추리물로 분류할 수 있다. (해설에 따르면 작가는 추리 대신 가족물로 분류하길 원한다고 하지만...) 그러니까 그렇게 제니와 헤어진 토마스는 며칠 후 람버르트라는 실험실에 있다가 형사의 방문을 받는다. 그날 밤 이후 제니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람버르트는 토마스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런데 람버르트가 넘겨 짚은 토마스의 사체유기 방법이 획기적이다.
현재 토마스는 쥐들을 연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쥐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그 쥐들을 굶기면 그 쥐들이 서로를 잡아 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 토마스의 연구 주제이다. 그런데 함께 연구원으로 일하는 알렉스의 증언 중, 제니가 사라진 그 다음 날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그 쥐들이 배고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제니와 토마스가 실랑이를 한 바로 그날 제니와 토마스가 실험실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등장하면서 결국 토마스는 구금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사건의 진행만 보면 추리물이지만 작가가 가족물이라고 우기는 이유에는 토마스의 아내 레오니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 임신을 강하게 원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레오니와 그런 레오니를 부담스러워하는 토마스 사이의 불협화음은 (두 사람이 선호하는 클래식 작곡가의 차이를 통해서 은유되기도 하는...) 이 사건을 가운데 두고 더욱 크게 공명한다. 토마스는 제니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 하지만 레오니는 이를 알아차리게 되고, 붙잡혀 있는 토마스는 심문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진술을 거부한다.
그러는 사이 레오니는 제니를 향한 질투심 (그 이면에는 한 번의 임신도 하지 못한 자신과 낙태를 하였지만 두 번의 임신 경험을 가진 제니를 비교하게 되는 마음이 함께 있다), 그 질투심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남편은 누군가를 죽일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 속에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남편의 무죄를 확정하게 되려는 순간, 결정적으로 한 구의 시체를 엉뚱한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 레오니가 임신하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로 나는 꿈에 아들을 보기 시작했다. 밤마다 아들과 체스를 두고, 함께 항구에서 산책을 하고, 아이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아빠, 사람들은 왜 사는 거야?”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려고.”』 (p.42)
소설은 일단 여러 가지 장르 소설의 장치들을 안정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소설의 초반 제니가 신고 있던 ‘굽 높은 흰 장화’에 대한 언급이 나중에 사건의 실체를 밝혀주는 키워드가 된다는 등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를 주기 위한 구성 요소를 적절히 삽입하고 있다. (이러한 덕분인지 스웨덴에서는 영화화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두 사람이 주고 받는 편지글이나 레오나의 일기 등 나름의 문학적 실험 요소들 또한 추가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또한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말마따나 추리 소설이 가지지 않아도 좋을 여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이를 바라는 아내와 그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남편이라는 가족 구성원이 갖게 되는 갈등의 요소는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시험관 아기에 대한 기사와 (소설이 씌어진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밋밋하지만 연결되고 있는 것이 그렇다. 그러니 아주 획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름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적절히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있어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마르턴 타르트 / 안미란 역 / 검은 새 (De Kroongetuige) / 310쪽 / 2009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