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와 시에, 이 가족의 흑역사의 시원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여섯 편의 서로 연관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연작 단편 소설집이라기 보다는 여섯 개의 시선으로 나뉘어 있는 하나의 장편 소설로 보는 것이 맞겠다. 아키라, 미키, 시에, 미쓰구, 사토미, 시게유키라는 한 가족의 여섯 인물에 초점이 맞춰진 하나의 큰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이 가족의 불행한 역사의 시원에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군인으로 참전하였던 한 인물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인물이 겪은 전쟁 그 내부의 조선인 위안부와의 관계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그래도 사랑이니까」.
“지금 돌이켜봐도, 서로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가 한없이 이어지는 도미노 게임처럼, 뒤에서 밀면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넘어지면서 앞에 있는 도미노를 밀 수밖에 없다. 도중에 멈추게 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pp.59~60) 십대 시절 집을 떠난 아키라가 십수년만에 새엄마였던 시즈코의 죽음에 맞춰 귀향한다. 그리고 이 어두운 인물 아키라의 과거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거기에는 의붓 여동생인 시에와의 사랑이 있다. 친엄마 하루요의 죽음 뒤에 사에라는 딸과 함께 가정부로 들어왔다가 후처가 된 시즈코, 그러나 시즈코는 그 전부터 아키라의 아버지였던 시게유키와 관계가 있었고 사에는 실은 절반의 피가 섞인 의붓동생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미 사에와 살을 섞는 사이가 된 뒤였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아키라는 집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시즈코의 죽음에 이르러 아키라는 다시 집을 찾는다.
「이별을 끝에 둔 사랑」.
“... 누구에게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 진실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런 어중간함에서 오는 가책.” (pp.105~106) 사에의 동생인 미키는 자신만이 유일하게 이 집에서 시게유키와 시즈코의 피를 갖고 태어난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러나 아키라가 집을 떠난 순간 실은 사에 또한 자신처럼 시게유키와 시즈코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간 가족의 평화를 위하여 애교를 부리며 그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 미키는 아이하라라는 유부남을 만나고 있다. 겉으로는 밝은 그녀이지만 속시원한 진실이 허락되지 않는 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자각 이후 비뚤어진 채 작동하게 된 사랑의 기계 장치 탓인지도 모른다.
「꺼지지 않는 불꽃」.
“낮게 갈라진 그 목소리가 귀에 닿는 순간, 애써 참아온 십오년이란 세월이 단숨에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토록 괴로웠던 날들의 기억도, 후회와 자기 연민 끝에 겨우 터득한 체념과 각오도 모두모두 터져나와 그리움과 반가움에 밀려나 버렸고, ‘만약에’ 역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p.189)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사에는 이후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주던 아키라와 함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그렇게 아키라가 집을 나간 이후 시즈코의 죽음에 맞춰 다시 돌아올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의 정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에는 어린 시절부터 이웃집에 살았던 세타로와의 약혼을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나일까」.
“십 대와 이십 대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걸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p.243)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키라의 형이자 사에와 미키의 의붓 오빠이기도 한 미쓰구는 단카이 세대이다. 오십대에 접어든 미쓰구는 그러나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이십대 초반의 마나미와 정을 나누는 사이이다. 부정을 모르고 자란 마나미의 도벽을 눈감아주는 사건 이후 두 사람은 이렇게 되었다. 그러나 미쓰구는 그것을 마냥 즐길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끝을 예감할 수 있을 뿐이다.
「구름송이」.
미쓰구의 딸인 사토미는 교감 선생님인 어머니의 교육열 속에서도 만화를 그리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접을 수가 없다. 자신의 꿈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한 사토미에게 아리따운 소녀 가나코라는 친구는 유일한 자기 편과도 같다. 그러니 자신이 짝사랑하는 겐스케와 가나코가 사귀는 것을 그저 모르는 체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마음앓이를 하던 사토미 앞에서 어린 시절 그녀를 괴롭히던 여선배가 다시 나타나면서 일이 꼬이게 된다. 친한 친구를 팔아 넘겼다는 자책을 하는 사토미를 보듬어주는 것은 할아버지인 시게유키이다.
「별을 담은 배」.
“... 한여름을 보내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싶어, 불현듯 정말 불현듯 마음이 동해 온천이라도 가자가 말하려고 했는데, 끝내 말하지 못했다. 늙은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굳이 보자니 어째 겸연쩍어서 그녀가 끓여준 차를 마시면서, 나중에 가면 되지 하고 생각한 것이 끝이었다... 그때 말을 꺼냈어도 어차피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기뻐하는 얼굴만이라도 봐둘 것을 하고 지금에야 후회한다. 훗날 이렇게 떠올리는 얼굴이, 아프다고 신음하면서 그대로 의식을 잃은 그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뿐이라니.” (p.439)
첫 번째 아내인 하루요에게 폭력을 가했던 시게유키는 두 번째 아내인 시즈코에게도 함부로 폭력을 휘둘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 전쟁에 끌려나간 시게유키는 참혹한 과정을 거치며 군인이 되어갔다. 살아있는 중국 소년의 배를 찌르며 총검술을 배웠고, 위안부였던 여인의 죽음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다. 전쟁 후에 돌아온 시게유키는 잔뜩 망가진 상태였고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고 어른이 되었고 이제 두 아내를 떠나보냈고 자신의 아들과 딸의 사랑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이제 사토미의 부탁으로 자신이 참여하였던 전쟁의 이야기를 어린 학생들에게 해주기로 한다.
이야기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나오키 수상작 답게 그 서술은 상당히 가볍게 진행된다고 하겠다. 아키라와 사에의 어두운 사랑, 시게유키가 치러낸 전쟁이라는 두 가지만으로도 버거운데 여기에 미키와 미쓰구의 불륜 그리고 사토미가 겪는 왕따 문제까지 겹치게 되니 이야기가 여기저기로 흩뿌려진 느낌이다. 자국의 부끄러운 역사까지를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작가의 의식만은 인정하기로 한다.
무라야마 유카 / 김난주 역 / 별을 담은 배 (星星の舟) / 예문사 / 463쪽 / 2014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