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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황선우 김혼비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최선을 다하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기로...

  이 년 전쯤에는 문보영 작가의 《준최선의 롱런》을 읽었다.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준최선은 대략 ‘대충하는 것은 아닌데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묵묵하게 롱런하기’로 요약될 수 있다. 나는 ‘준최선의 롱런’이라는 책 제목과 그 개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제목이 흡족하였다. 김혼비라는 작가는 닉 혼비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아니, ‘우리’라고 묶긴 했지만 사실 제 사정이 훨씬 나았죠. 같은 첫 편지라고 하더라도 선우씨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막막한 시작을 해야 했지만, 저는 선우씨의 편지를 뼈대 삼아 답장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이렇게 쓰고 보니 참 간단한 일인데 왜 시작도 못 하고 물러 났을까요. 야심차게 대부도로 향할 때만 해도 제 목표는 A4 두 매였는데 A4는커녕 원고지 두 매도 채우지 못했어요. 바다가 아니라 두 매 산골에 가야 했던 걸까요.” (p.18)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황선우와 김혼비 두 작가가 나눈 편지를 모아 놓은 산문집이다. 나는 이 책을 마침 세종에서 열린 철인3종 대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읽었다. (심지어 대회를 앞두고 남겨야 하는 출사표에서 이 책을 인용하였다.) 그리고 문득 죽을 수는 없으니까, 다가올 철인3종 대회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말아야겠다, 라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긴장을 덜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빅토리 노트』에서 이옥선 작가님은 노자의 사상을 인용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지나친 열심과 부지런을 금지하고 대신 한 템포씩 느리게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저보다 한참 오래 산 선배가 조금 느긋해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게 참 마음이 놓여요.” (p.35)


  사실 최선이라는 단어에 나의 마음은 후하지 않다. 나는 최선이라는 단어가 왠지 어떤 일의 결과와 한 묶음으로 얽혀 있는 것만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거나,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그 결과가 미흡했다는 식의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추궁이나 그 결과가 미흡했으니 최선에 최선을 더하라는 다그침이 들어 있는 것 같다.


  “... 조금 헐렁한 상복을 입고 어머니 곁에 서 있는 흔은 40대인데도 왜 그리 어린애처럽 보이는지 저도 모르게 조카에게 하듯 흔의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내렸습니다. 어느 사회적 모임에서 만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보다는 주로 특정 주제가 있거나 일과 관련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나누어온 사람이 사실은 누군가의 딸이고, 그 관계망 안에서 남이 모를 무거운 짐들을 홀로 짊어지고 사는 존재이며, 꺾이기 쉬운 무방비한 인간이라는 것을 상가만큼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장소는 없는 것 같아요.” (p.118)


  살다 보면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쉽게 결과를 얻는 이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최선이라는 것에 너무 매몰되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만 좌절하게 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선을 다하였지만 그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저 쿨, 하다고 추앙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이러한 자세는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저 자신을 평안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어떤 마음과 마음을 장난스레 이어붙여 세상이 가끔씩 툭툭 던지는 유쾌한 농담들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왕이면 선하고 어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계속 꾸게 만들어요. 그래서 누가 오해받기 쉬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왜 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술은 언제나 저를 조금 허술하게 만드는데, 허술한 사람에게 세상이 좀더 농담을 잘 던져서 그렇다고요.” (pp.186~187)  


  그렇다고 최선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대회날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백여일의 준비 기간 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저 최선이라는 튜브가 너무 빵빵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기로 하였을 뿐이다. 마지막 한 번의 펌프질이 최선이라는 튜브를 펑크낼까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하지는 않음으로써 첫 번째 철인3종 대회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황선우 김혼비 /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 문학동네 / 217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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