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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딜리팅이라는 첨단의 소재를 향하고 있는 너무 밋밋한 시선과 이야기...

by 우주에부는바람

간혹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나의 하드에 들어 있는 일기 파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블로그에 올린 글은 또 어떻게 처리를 하는 것이 좋으며, 각종 SNS로 주고 받은 쪽지며 사적인 이메일들은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죽기 전에 모두 딜리트를 하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 (근데 내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아나, 내일이면 죽을 것 같아서 다 딜리트를 했는데 한 몇 년 더 살게 된다면...) 아니면 누군가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그것들의 정리를 맡기는 것이 좋을지 하는...


예전에 이런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은 있다. 그러니까 지인의 친구가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그의 미니홈피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간혹 그 미니홈피에 들어가 주인 없는 (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고 하는 것이 맞을가) 그 공간에서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먼저 떠난 친구를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모호한 슬픔의 감정을 느꼈다.


김중혁의 이번 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이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면 흔하게 할 수 있는 걱정 내지는 상상을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검토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이 발달한 나라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가 아마도 가장 광범위하게 맞아들일 문제가 될 것이다)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이처럼 우리가 조만간 맞닥뜨리게 될 보편적인 문제에 특화되어 있지는 않다.


소설의 주인공인 구동치는 사립 탐정이다. 그는 딜리팅이라는 업무 분야를 개척하여 특화시킨 사립 탐정이다. 딜리팅은 지금은 죽은 이가 살아 있을 때 작성한 계약서에 의하여 진행된다. 그 계약서는 모두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장은 인적사항, 두 번째 장은 자신의 모든 비밀번호, 세 번째 장은 자신이 죽고 난 다음 없애야 할 물건과 물건이 있는 장소 그리고 면책 사유가 적혀 있는 네 번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컴퓨터나 USB 등이어서 그렇지 소설에서의 딜리팅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사후 처리 작업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러한 구동치에게 딜리팅을 의뢰한 배동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위에서 지적한 마지막 장의 면책 사유라는 것은 계약자가 살해되었을 경우 딜리팅을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배동훈의 죽음은 자살과 타살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져 있는 것이다. 구동치는 결국 배동훈이 타살되었을 수도 있다고 여기지만 딜리팅 계약을 성실하게 마무리 하려다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빙자한 포르노 제작업자인 천일수 그리고 그 천일수를 경호하는 무술단체와 엮이게 되고, 이 와중에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이영민의 거간꾼 노릇을 견딘다.


일종의 추리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소설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터넷 세상의 남겨질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좀더 집중하여 이야기를 전개했더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진부하다. 주인공인 사립 탐정 구동치의 캐릭터도 그렇거니와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천일수도 평범하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 중에서도 씬 스틸러라 불릴 법한 캐릭터를 발견할 수 없다. 이야기와 인물 모두가 그저 밋밋하다.


재기출중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심하게 범작이다. 심하게 말한다면 소설가도 생활인이니 생활의 방편으로 내몰려 서둘러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추리 소설의 가장 안전한 진행 방식에 따라 특이할 것 없는 이야기를 특이할 것 없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하고 있다. 뭔가 젊은 작가의 낭비되고 있는 듯 한 재능을 본 것 같아 아쉽다. 이야기가 아쉽다.



김중혁 /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 문학과지성사 / 420쪽 / 20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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