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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목요일에 만나요》

실체 불분명한 것들의 실체와 분명하게 만나려 하는 순간들...

by 우주에부는바람

「PASSWORD」.

외국으로 입양되었던 나는 생모를 찾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한국을 찾아 고모를 만난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거뒀던 고모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생모를 만나지는 못한 채 나는 다시 네델란드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부모의 딸인 J를 위하여 수술대에 오르고 그들에게서 돈을 받아 대학에 가고, 대학을 그만둔 후에는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을 하다가 다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모의 집에서 고모의 두 딸인 M과 D와 함께 지낸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파트의 꼭대기층에 갇힌 채 살아가는 다운증후군 소년에 대해 알게 된다. 우리 모두는 생의 비밀을 하나씩 숨겨둔 방 하나씩을 두고 살아가는 존재,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번호를 손에 쥐기 위하여 애쓰는 존재가 아닐까. 그러나 막상 패스워드를 알게 되었을 때 그 방으로 성큼 들어갈 수 있기는 한 걸까...


「북쪽 도시에 갔었어」.

“태오의 인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한몸이었고 그들은 네 개의 건강한 발로 광활한 세상을 거닐었다. 네 개의 눈이 있었기에 거대한 산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고 밤이 되면 하나의 머리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얼굴이 서로를 마주보며 고요히 사랑을 나누었다...” (p.47) 캐나다 벤쿠버에서 만난 나와 너의 사랑, 그리고 나와 K의 사랑 그리고 너와 칼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게이 러브라고 부러 표현할 필요가 없는 어떤 사랑들이 벌어졌던 북쪽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러한 이야기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목요일에 만나요」.

“... 고양이는 느리게 여자에게 다가왔다. 손을 뻗어 고양이를 안았다. 내장을 감싸고 있는 작은 뼈가 손가락 끝으로 느껴질 만큼 굶주린 고양이었다. 어디 갔다 왔니? 고양이의 등에 볼을 부비며 여자는 울먹이듯 말했다. 고양이는 이내 야옹, 고양이다운 소리로 대답했다. 여자가 해석할 수 없는, 여린 분홍빛의 언어였다.” (p.80) 소설 속 여자의 언어를 독자인 나는 고양이의 언어라도 되는 양 해석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홍천의 한 병원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엄마, 그러한 엄마를 찾아가고는 하는 여자, 그리고 일본과 인도, 태국과 캄보디아를 떠돌며 여자에게 엽서를 보내는 K...


「이보나와 춤을 추었다」.

“이보나. 주섬주섬 일어나 느릅나무 책상 쪽으로 다가가 그녀를 찾았다. 오래 기다렸지만 창문에는 불투명한 실루엣뿐, 이보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내 느릅나무 책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예감했던 일이었으므로, 아버지와 같은 부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이 맞았기에, 자연스러운 절차라는 듯 나는 그녀를 정지된 시간 속으로 덤덤히 보내주었다...” (p.105) 나는 이보나이고 이보나는 나인가... 고독의 책상에서 탄생한 이보나는 나의 산출물인가 아니면 나는 이보나라는 태생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나의 탄생의 연원과 현재는 어떤 식의 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가...


「영원의 달리기」.

꿈과 숲과 달리기... 사소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된 소설 쓰기의 일종의 전형과도 같은 것... 이야기는 어느 곳으로부터든 솟아 올라올 수 있으며 그것을 길어 올리는 것은 작가의 연약한 팔일 수도 있다는 것...


「유리」.

유리로 만들어진 도시... 그러나 막상 유리인 것은 도시의 실체가 아니라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녀가 만난 학생 최와 최의 여자 친구의 이야기는 별로 쓸모가 없다. 버스에서 내린 뒤 발견하게 되는 소녀 한유리와 그녀를 어딘가로 끌고가는 남자아이들에게서 그녀의 세상이 유리였던 어떤 연유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밤의 한가운데서」.

“... 한마디로 이 나라는 접근하거나 참견하지 않는 그저 그 침몰 과정을 지켜보면 그뿐인 거대한 폐선(廢船)인 셈이다...” (p.167)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읽은 소설의 한 귀퉁이를 무심히 들여다본다. 소설의 주인공이 헤매고 다니며 바라보는 세상을 지금과 오버랩시킬 수 있을 뿐이다.


「새의 종말」.

모든 새가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G시에 모인 학자들은 무엇을 위하여 그곳에 있는 것일까... 그곳에서 감추려고 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군사기밀지역으로 묶여 있는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홍의 부고」.

“... 눈을 감았다. 이제 곧 어딘가에서 전화벨이 울릴 것이고 안은 홍의 부고를 들으며 잠에서 깰 터였다. 아직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은 이른 아침에. 잠시 후, 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p.247) 실체가 불분명한 것은 어떤 사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때로는 어떤 사람도 그리고 어떤 상황도 실체의 불분명함에 도달할 수 있다. 홍의 부고를 듣고 홍에 대해 알아가는 나의 과정도 그리고 홍 그 자체도 불분명하다. 모든 것을 꿈이러니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꿈 꾸지 않는 와중에도 이 모든 실체 불분명한 것들을 분명하게 느끼고는 한다.



조해진 / 목요일에 만나요 / 문학동네 / 268쪽 / 20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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