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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여름의 맛》

내 삶의 멀고도 다른 한 켠에서 살아가는 나를 향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두 여자 이야기」.

“30여 년 전 그날, 어린 그녀가 산속에 남겨두고 온 것이 혹시나 또 다른 그녀였다면, 이를테면 그녀의 반쪽이었다면,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그녀와는 달리 남은 반쪽이 훨씬 나중에야 산을 내려왔다면 그녀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pp.37~38)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사소한 한국 버전쯤이라고 하면 어떨까... 어린 시절 그 도시에 있는 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 그녀는 최와 김이라는 솥의 발과도 같은 이성의 친구들과 함께 지금 그 도시에 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꼭 닮았다는 어떤 여인에 대해 알게 된다. 우리들 삶의 현재성 혹은 일회성에 반기를 들고 나서는 도플 갱어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을까...


「여름의 맛」.

“그녀는 다시 입을 벌려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복숭아가 어찌나 단지 잇몸이 가려웠다...” (p.47) 복숭아가 달아서 그것을 먹으면 잇몸이 가렵다고 한다. 작가의 이런 표현에 온 몸이 가려워지려고 한다. 단 복숭아를 먹을 때 실제로 잇몸이 가려웠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그닥이지만... 여하튼 때로는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자신을 사로잡은 맛이라는 것이 평생토록 나의 맛을 좌우하기도 한다.


「알파의 시간」.

무엇을 깨닫는 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에 의하여 ‘알파의 시간’이라고 명명된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열리는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목전에 둔 그때, 아버지는 딸 하나와 아들 셋을 아내에게 맡기고 땅을 찾아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시간이 흘렀다. 도로 주변의 야립 간판에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뭔가를 남겨 놓겠다던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좀더 풍경을 응시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오후, 가로지르다」.

작가는 큐비클로 구별되고 가려진 현대인의 일상에 시선을 들이밀고 있다. 나뉜 채로 서로를 넘겨다보는 우리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그곳 안에 있을 때는 볼 수 없는 것들, 그것들의 위로 솟구쳐야만 겨우 확인이 가능한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카레 온 더 보더」.

혹시 누군가 자신을 폄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떨까.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 굴었지만 실제로는 그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니 실은 이미 훨씬 전부터 그것을 내가 알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필요에 의하여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든 채 살아오고 있었다면... 과거 한때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에어로빅 학원을 다니던 시절의 영은이, 그녀와 함께 보냈던 럭셔리한 술집에서의 시간과 이후 영은의 단칸방에서 마주치게 되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군상들과의 아침 나절... 이 시간들이 겹치면서 이제 그녀는 지금과 좀더 가깝게 마주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제비꽃, 제비꽃이여」.

나는 단 한 줄의 문구를 통하여 남자의 성적 환상을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뭔가를 광고하기 위하여 딱 한 줄만이 배정된 배너 영역에 들어갈 문구를 만들어내는 일은 일단 나의 적성에 맞는 것 같다. 과거에는 놀이공원에서 무용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절 높은 하이힐을 신던 그 시절 나는 계단에서 크게 넘어질 뻔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또 한 번 그러한 낙상의 위험을 넘긴다. 어쩌면 이십년 후 예순이 되었을 때는 그러한 위험을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삼겹살을 먹는 모임에 들어갔고, 나의 엄마는 돼지를 치고 있다. 나의 엄마는 돼지 2마리로 시작하여 지금은 농장을 꾸려가고 있으며, 삼겹살을 먹는 모임으로 나를 이끌었던 여직원은 이제 그곳을 나갔지만, 나는 그곳에서 만났던 H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H는 모임에 나오지 않는다. 엄마의 돼지 농장에는 큰 불이 나서 꼬리에 불이 붙은 돼지들이 뛰어다니고, 어렵사리 위치를 파악하여 찾아간 H는 돼지꼴이 되어 있다.


「그 여름의 수사(修辭)」.

그 여름을 꾸며주는 것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지방 소도시의 아버지의 가게,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와 함께 찾아간 할머니의 죽음을 기리던 어느 휴양지 섬의 풍경이다. 이와 함께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꾸며주는 것은 모든 것을 열 자 안팎으로 줄여야 했던 전보의 내용들... 하지만 이제 시간이 흘렀고, ‘내 속의 문장은 만연체로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길고 또 길어졌다.’ 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만연체보다 어린 시절의 열 자짜리 전보가 더 많은 사실을 담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은 독자인 나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1968년의 만우절」.

다른 사람들에게는 월드컵 축구의 열기가 가득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그때, 나는 이틀째 혼수사애인 중환자실의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전이 끝나던 무렵 숨이 멎었던 아버지는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려는 순간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8개월을 더 살았다. 1968년 만우절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였던 아빠, 그 이후 뱃속에 생긴 아이를 부여안고 자살을 하려 했던 엄마,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현재에 이르게 된 나 사이의 헐겁지만 벗겨지지는 않는 어떤 연결고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순천엔 왜 간 걸까, 그녀는」.

어쩌면 소설집의 첫 번째 작품 <두 여자 이야기>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 것 같다. 장미는 지방의 대학에서 있을 공연을 위해 내려가는 연예인이다. 그녀는 이미 내려가 있는 홍과 그렇고 그런 사이이기도 한데, 그것을 즐겁게 여길만한 시기는 아니다. 내려가는 길 장미의 차는 사고가 난 길에 서게 되고 또 직접 사고를 당하게도 되는데 그때 장미는 과거의 한 때를 떠올리게 된다. 자율 학습이 끝나고 돌아오던 길, 역을 묻는 봉고차와 마주친 장미는 마지막 순간 봉고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또 다른 장미는 그 봉고차에 오른 것도 같다. 그리고 그 장미는 몸을 팔며 술을 팔며 돌고 돌아 어느 순간 순천에서 그 모습을 나타냈다. 순천에 있는 나이키 사거리에서 찍힌 장미는 누구일까...



하성란 / 여름의 맛 / 문학과지성사 / 368쪽 / 20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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