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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8. 2024

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능청스럽지만 현명한 하루키가 적당히 풀어주는 일상의 무릎 같은...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는 어떤 거대한 사상의 단초가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면서 아 바로 그거였어, 하며 한 번쯤 내리칠 수 있는 튼튼한 허벅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일상의 무릎(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그러니까 이것이 없으면 우리의 일상은 너무 뻣뻣해질 것이다, 라는 의미에서...) 같다. 그러니까 대충 능청스럽지만 현명한,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부드러움이 있다. 뾰족하지 않고 둥글둥글해서 놀라지 않고도 고개 끄덕일 수 있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처럼... (막상 여자들이라면 다르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 나 나름대로 뻔뻔하게 전반적인 여성에 대해 오랜 세월 품어온 설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여성은 화내고 싶은 건이 있어서 화내는 게 아니라, 화내고 싶을 때가 있어서 화낸다’라는 것이다.” (p.18)

  “... 세상 사람 대부분은 실용적인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오히려 따뜻한 맞장구를 원하는 게 아닐까? 오래 살며 이런저런 경험을 쌓다보니 점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결론이란 것은 대부분, 이쪽에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쪽에서 이미 결정한 다음 멋대로 찾아오는 것 같다...” (p.126)


  하루키가 쓰는 이런 산문이 한두 페이지 들어가 있는 여성지를 읽는 (무라카미 라디오는 하루키가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지 <앙앙>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이제 거기에 글 쓰는 것은 그만두었다고 하지만) 일본의 젊은 여성이 조금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물론 실상은 뭐 이런 고리타분한 작가의 글이 여기에 들어 있는 거야, 하면서 얼른 페이지를 넘겨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한참 옛날에 NHK 교육방송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출연을 제안받았다. 언제나처럼 “얼굴을 비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더니 담당 연출자가 “저기요, 무라카미 씨, 저희 프로그램 시청률은 이 퍼센트 이하랍니다. 거의 아무도 보지 않습니다. 그런 걱정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했다. ‘흠, 그런가?’ 하면서도 ‘잠깐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금방 끝나” 하고 섹스하며 여성에게 다그치는 녀석이 지인 중에 있는데(세상에는 이상한 놈들이 꽤 많다), NHK 연출자의 핑계는 그것과 좀 비슷했다. 그 말을 듣고 ‘그래? 바로 끝나면 됐어. 잠깐 해볼까’ 하는 여성은 없을 테죠. 헌혈도 아니고.』(pp.142~143)


  그래도 위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박장대소하는 센스를 갖춘 여성들도 있을 터이니, 그런 여자는 옷도 뭔가 유니크하게 입지 않을까 상상하게도 된다. 이와 함께 하루키라는 소설가의 어떤 성향을 알게 되는 것도 즐겁다. (하루키는 지금까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간혹 등장하는 재즈나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로 그의 취향을 살펴보는 것도,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면모를 엿보는 것도, 그리고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뒷이야기 를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바람을 생각해라.’ ...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의 마지막 한 줄, 옛날부터 왠지 이 문장에 몹시 끌렸다. Think of nothing things, think of wind, 내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이 문장을 염두에 두고 붙인 제목이었다. nothing things라는 어감이 정말 좋다.” (p.139)


  그러고 보니 옛날의 하루키는 혹은 그 시절의 하루키를 읽던 나는 참 좋았는데, 하는 데까지 생각이 가닿는다. 옛날의 하루키는 뭔가 젠 체 하는 것 같지만 그 젠 체 하는 포즈를 숨기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의 하루키는 너무 심각해져 버렸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런 산문집에서 심각하지 않은 하루키를 보면 울컥 반갑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그 심각하지 않은 상태가 나 또한 무장해제 시킨다.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라는 T.S.엘리엇의 유명한 시가 있는데, 아시는지? ... ‘그건 단순한 휴일의 시간 때우기가 아닙니다’라고 이어진다. 그 시에서 엘리엇 씨는 고양이의 세 개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개는 평소 부르는 간단한 이름. 이를테면 ‘나비’라든가. 또 하나는 평소 사용하지는 않아도 하나쯤은 가져야 할 생색용으로 고양이다운 점잖은 이름. 이를테면 음, ‘흑진주’라든가 ‘물망초’라든가. 그리고 또 하나는 고양이 자신밖에 모르는 비밀 이름. 그것은 절대 남한테 발설되는 일이 없다.” (p.164)


  그러니 위와 같은 글을 읽고 나서는 골똘히 우리집 두 마리 고양이의 두 번째 이름과 세 번째 이름을 따져본다. 음, 그렇다면 난 용이의 두 번째 이름은 릴리 마를린으로, 들녘이의 두 번째 이름은 초콜릿군으로 해야지. 그렇지만 역시 궁금한 것은 얘네들만 알고 있다는 세 번째 이름, 혹시 내가 없는 사이 아주 가끔 둘 사이에서만 수신되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세 번째 이름은 궁금하다. 역시 하루키 때문에 생기는 궁금증이겠지요. 



무라카미 하루키 / 오하시 아유미 그림 / 권남희 역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サラダ好きのライオン : 村上ラヂオ3) / 비체 / 223쪽 / 20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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