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인들의 불온한 책 읽기의 역사에 대한 두루뭉술한 탐구...
책의 제목이 꽤나 도발적이다. 책을 읽는 일이 대중과의 사이에 간격을 두고 있던 시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인물들을 향하여 주류 사회가 품었을 법한 위기 의식을 염두에 두고 붙였을 책의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으로 보는 독서의 역사’ 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으니 오히려 조금 시들해져버렸다. 책의 내용 또한 그저 두루뭉술한 독서의 역사 쯤이 되고 있다.
“자신을 재창조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하나의 잣대, 하나의 무기가 필요한데 책은 훌륭하게 그 역할을 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p.11)
여성과 그 여성이 읽는 혹은 들고 있는 책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다루고 있기는 한데 실제로는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하여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독서를 권장하는 교양서쯤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간간히 재미있는 내용이 없지는 않다. 그러니 대중의 호기심을 가볍게 충족시켜준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겠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대인의 ‘조용한 독서’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런 내용 말이다.
“... 조용한 독서는 독자가 읽은 내용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이 읽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감출 수 있고 그 결과물을 자신만의 소유물로 만들 수 있다...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만이 아니라, 문장을 커다랗게 소리 내서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오늘날에는 문맹자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상황이 정반대였던 시기도 분명 있었다. 현재는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 규범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커다랗게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규범이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인도 속으로만 책을 읽는 방법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 이런 독서 태도는 부차적이었다... 고대에는 커다란 소리를 내서, 혹은 최소한 낮은 소리라도 내면서 책을 읽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 주변에서 놀라는 사람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독서가 소리 내어 읽는 독서에서 해방된 것은 처음에는 필사 수도사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독서법은 나중에 대학의 학자와 교양 있는 귀족에게 옮아갔으며, 문맹 퇴치의 진전과 함께 점차 다른 계층으로까지 아주 서서히 퍼져 나갔다.” (pp.23~24)
지금이야 누구나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지만 과거에는 그러한 행위 자체가 뭔가 어색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이채롭다.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전 로마에서는 책을 읽어주는 노예가 있었다 하고, 우리네 선조들도 작은 책상에 올려 놓은 서적들을 소리 내어 읽는 장면을 종종 사극에서 볼 수 있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도 어린 아이들의 경우 소리 내어 책을 읽도록 가르치기는 하는데, 좀 더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 쿠마이의 무녀는 이탈리아의 평야 지대인 쿠마이 지역에 있던 동굴에서 신탁을 알렸다고 한다... 오비디는 이 무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아폴론이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녀를 선물로 매수하려고 하자 그녀는 한 주먹 안에 들어 있는 모래 알갱이만큼 수명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소원을 말할 때 그 삶이 청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그녀는 천년의 삶 대부분을 쇠약한 노파로 살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장대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몸은 점점 작아지고 쇠약해져 결국 그녀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고, 나중에는 오직 목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pp.63~65)
이외에도 몇몇 눈길을 끄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쿠마이의 무녀가 그 중 하나이다. 수명 연장에 대한 욕망이 비틀린 채로 해소되는 경우에 대한 암시로 적당해 보인다. 그런가하면 실제하는 인물인 버네사 벨의 인생에 대한 짧은 기록도 여기 옮겨본다. 간혹 막장 드라마의 보다 버전업된 막장 버전으로 상상해보곤 하던 것이 버젓히 존재했음을 확인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상상력은 언제나 현실보다 한 발자국쯤 뒤에 쳐져 있다.
“버네사 벨은 화가이자 도안가이며 실내장식가였다. 그녀는 미술 평론가인 클리브 벨과 결혼하고 역시 미술 평론가인 로저 프라이와 불륜 관계를 맺은 후에, 1914년 던컨 그랜트와 다시 살림을 차렸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안젤리카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면서 1942년에 아버지의 옛 남자 애인이었던 소설가 데이비드 가넷과 결혼했다.” (p.230)
도판이 많이 삽입되어 있고 분량이 많지 않아 가볍게 읽기에 나쁘지 않으나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하였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아내를 두고 있다면 그림 속의 여자들이 그리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아내는 지금도 벽 너머 탁자에서 책을 읽고 있다. 아 그런데 책은 책이되 책이 아닌데,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전자책을 읽는 중이다. 몇 세기 뒤에 비슷한 컨셉의 책이 다시 나오게 된다면 아마도 스마트폰이나 테블릿 피시를 들여다보는 여인이 주로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슈테판 볼만 / 조이한, 김정근 역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Frauen, Die Lesen, Sind Gefährlich) / 263쪽 / 2006,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