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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 멜로이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만...》

일상의 사이사이 판단과 선택을 강요받는 우리를 향한 추궁과 변호...

by 우주에부는바람

『... 대학에 다닐 때 메그가 시를 써서 집에 가져온 적이 있었고,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두 가지 모두 내가 원하는 유일한 길이다.” 두 가지 모두를 원하는 자신의 강력한 힘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어떤 바보가 오직 한 가지 길만을 원하겠는가?』 (p.231) 「아이들」중


우리가 살면서 흔하게 빠질 수 있는 양가 감정을 이토록 시크하게 그릴 수 있을까 싶다.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는 일상에 지친 우리들을 이토록 요령껏 추궁하거나 변호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는 듬성듬성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같지만 그 사이로 촘촘하게 파고들 수밖에 없도록 독자를 채근한다. 소설은 이야기가 중요해, 라고 매번 강조하고는 하였는데, 실은 여기서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건 그 이야기가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이야기여야 해, 라는 의미였다. 작가는 아주 정확히 딱 그만큼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트래비스 B」.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쳇 모랜은 겨울 동안 도시의 외곽에서 소 먹이는 일을 하며 지낸다. 간혹 도시로 나오고는 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우연히 트래비스를 만난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변호사가 된 트래비스는 아직 힘들다. 그래서 그녀는 무려 아홉시간 반을 운전하고 다시 그만큼 시간을 들여 돌아가야 하는 현재의 일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쳇은 호감을 갖지만 이 또한 쉽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의 물리적인 거리는 서로가 처한 상황의 차이만큼이나 멀고, 두 사람은 아마도 가까워지기 힘들 것이다. 우리들 삶에서 모두들 그러하듯이...


「초록에 빨강」.

열다섯 살의 샘은 아버지와 해리 삼촌 그리고 해리 삼촌의 고객이 될 수도 있을 레이턴과 함께 낚시 여행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레이턴은 어린 소녀에게 어떤 ‘갈망과 음모’가 섞인 제스처를 취한다. 그리고 그러한 제스처들이 벌어지는 동안 아버지와 해리 삼촌은 자리에 없거나 자리를 떴다. 레이턴은 고객이 되지 않았고 샘은 이제 고향인 몬태나를 떠나 기숙학교로 가게 되었다. 샘은 그곳에서 또 다른 ‘갈망과 음모로 가득 찬’ 성장기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사랑스런 리타」.

스물 셋에 고아가 된 스티븐과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초등학교 동창인 매력적인 리타, 그리고 그런 리타를 사랑하게 된 스티븐의 친구 에이시... 여기에 낙후한 블루 컬러들의 도시라는 배경이 합쳐지면서 이야기는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젊지만 그 신산함을 피해갈 수 없는 이들의 우울한 일상이, 서로를 사랑하기 힘들었던 젊은 청춘들, 그리고 사랑하기 힘든 변해가는 도시와 함께 잘 버무려지고 있다.


「스파이 대 스파이」.

형 애런과 동생인 조지의 티격태격이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는 애런의 딸이자 조지의 조카인 클레어라는 존재가 묘하게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어 어느 한 쪽으로 확 기울어지지 않고 소설이 팽팽해지고 있다. “... 그들은 서로 꼬리가 묶여 있는 두 마리 개처럼 엮여 있었다. 상대에게 정반대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고, 필연적으로 서로를 잡아당기지 않고는 단 한 순간도 편안히 살 수 없었다...” (p.107) 안정지향적인 형과 모험가 스타일의 동생이 벌이는 한바탕 난투극이 흥미롭다.


「투스텝」.

앨리스는 절친인 네이오미에게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자신의 심정을 실토한다. 그러나 곧이어 점점 드러나는 외도의 정체... 그리고 곧이어 남편이 돌아오고 앨리스는 네이오미가 있는 자리에서 남편을 추궁한다. 어딘가 마지못해 보이는 남편은 네이오미를 의식하면서도 자신에게 안기는 앨리스를 거절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투 스텝...


「여자친구」.

자신의 딸을 죽인 남자의 여자친구를 호텔로 부른 아버지는 그녀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막 재판을 끝내고 그 살인자에 대한 유죄 선고를 보고 온 다음이다. 하지만 그는 알고 싶다, 자신의 딸이 어떤 연유로 살해를 당하게 된 것인지...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진실이 그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를 더욱 큰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릴리애너」.

독자들의 어림짐작을 일거에 거절하는 듯한 시크한 결말이 나쁘지 않다. 죽은 줄 알았던 엄청난 부자 할머니의 출현과 그런 할머니를 통해 뭔가를 기대하고 있던 주인공의 심사... 그러나 그 주인공의 심사가 그리 비뚤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은근히 그가 적절한 도움을 받고 그와 아내와 아이들이 좀더 편안해지기를 마음도 있었는데...


「아홉 살」.

아홉 살인 밸런타인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밸런타인의 눈이 동시에 잘 그려지고 있다고나 할까... 아버지가 떠난 후 여러 남자를 만났던 엄마에게 이번 남자인 카를로는 그리 특벼할 것이 없다. 다만 그 카를로의 잘 생긴 아들인 제이크가 밸런타인에게 조금 특별할 뿐이다.


「아구스틴」.

“... 그의 마음속에서 이네스는 이십대의 젊은 부인이었고, 그는 그녀와 몰래 달아날 작정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남편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걸 잃을 테니까. 나중에는 남편이 너무 많은 걸 잃어서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변덕스런 프랑스 여자의 하녀로 일하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건 인생은 당신의 턱에 주먹을 날릴 수 있다.” (p.199) 사랑스럽던 두 딸은 이제 자신의 재산을 넘겨 받을 궁리만 하고 있는 것 같고,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하였던 유부녀였던 이네스는 이곳을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지만 여전히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잘못 발사된 탄환이 자동차 밑창에 구멍을 내고 말았고 그 반동이 몸에 남아 있는 그에게, 삶이란 그렇게 어떤 순간에 대한 여진으로 가득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

과거 어느 한때 자신을 유혹하려 했고 그 유혹에 굴복하여 키스를 하였던, 친구의 딸인 제니와 호숫가 별장에서 마주하게 된 필딩은 사실은 지금 아내인 레니 말고도 과거 그 도시 모든 아이들의 수영강사였던 엘라를 좋아하고 있다. 제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그러한 제니를 필딩의 아들인 게빈은 마음 속으로 좋아한다.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이며 필딩으로 하여금 어떤 결단을 내리도록 채근하는 그러한 때에 아내인 레니는 그의 품으로 파고든다. 우리는 필딩이 하게 될 선택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소설 속의 필딩도 모르고 있을 수 있다.


「오 탄넨바움」.

크리스마스를 맞아 트리용 나무를 잘라 가지고 오던 에버렛은 산길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한 매혹적인 여자 보니와 그녀의 남편 클라이드를 차에 태우게 된다. 그리고 아내인 팸은 어린 딸이 있는 차에 낯선 이들을 태운 것이 못마땅하다. 가족의 관계를 곤고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이 서구의 명절에 에버렛은 은밀한 유혹 속으로 빠져들려 한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이토록 야릇한 구성의 소설이라니...



마일리 멜로이 / 강정우 역 /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만 있다면 (Both Ways Is The Only Way I Wnat It) / 책세상 / 256쪽 / 20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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