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메타북의 정신...
*2014년 1월 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보통 책에 대한 책을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책을 메타meta북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메타북이란 ‘책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책에 담긴 내용인 생각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다룬 책을 의미한다) 읽는 경우 세 가지쯤의 좋은 점을 취하게 된다. 하나는 그 책 안에서 내가 이미 읽은 책을 골라내며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책을 통하여 내가 읽어야 할 책을 추천받으며 새로운 지식의 곡간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어떤 책 혹은 그 책의 내용이나 저자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이 마지막 장점을 취하기에 아주 좋다.
“오래된 고전들은 원래의 것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어쩌면 그것들은 오랜 세월 동안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마다 주류 이데올로기를 가진 편집자의 의도에 맞게 필요한 만큼 적당히 변형되어 오늘에 이른 것일지 모른다. 그것들을 변형시켜 살려낸 이들은 그 주인공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그 성인의 입을 빌려 민중들에게 자신들의 도덕을 강요했던 것이다.” (p.176)
책은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첫 번째는 ‘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이다. 혁명을 일으킨 여러 동력들 중에서도 그 시기의 사람들이 즐겨 읽은 책을 대상으로 연구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을 토대로 하여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의 민중들은 도대체 어떤 책들을 읽었고, 그 책들은 이러한 혁명의 열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연구하는 내용이다. 당시의 베스트셀러들 중 한 축이 바로 포르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포르노소설과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저 에로틱한 연애 소설 정도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대혁명 이전에 어떤 책을 읽었을까? ...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로버트 단턴)는 혁명 전, 그러니까 18세기에 금지된 베스트셀러를 25년 동안이나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세 종류의 책을 차자냈다. 그것은 포르노소설과 SF, 그리고 정치적인 중상과 비방을 담은 소설이었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위대한 고전’으로 알려진 책들은 그 목록에 없다는 사실이다. 더 놀랍고 재미있는 것은 그 위대한 계몽사상가들 역시 포르노소설이나 그에 버금가는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 《철학서간 Letters Philosohpiques》(1734)으로 유명한 볼테르(1694~1778)는 음란하과 외설적인 《오를레앙의 처녀 La Pucelle d'Orleans》(18세기 초)를 썼다. 또 백과사전으로 유명한 디도르(1713~1784)는 루이 15세를 대놓고 풍자한 소설 《경솔한 보배 Les Bijoux Indiscrets》(1748)를 썼는데, 여기서 보배란 ‘말하는 음문 vagina’을 뜻한다. 이 소설에는 만고굴이라는 콩고의 술탄이 등장하는데, 그는 여자 성기가 말하게 만드는 요술반지를 끼고 있다. 디드로는 이 프로노소설 때문에 빙센 Vincennes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리고 루소의 《고백록 Confession》(1782~1789)은 소설은 아니지만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pp.41~42)
두 번째 이야기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제목을 갖는데, 첫 번째 이야기와 얽혀 있다. 그러니까 혁명기 직전이 유럽에서 나온 여러 과학 연구와 그 연구를 바탕으로 한 책들을 다룬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과하여》(1543), 갈릴레오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1632), 뉴턴의 《프린키피아》(1687) 등을 언급하지만 그 책의 내용 자체 보다는 현재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어려운 그 책들이 어떤 식으로 전파되었고, 사람들의 생각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룬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나 고전은 실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정관념에 가깝다...” (p.140)
세 번째 이야기는 고전에 대해서 우리의 편협하게 고정된 관념을 지적하는 부분으로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플라톤의 기록인 《변명》, 그리고 공자의 어록을 그 제자들이 정리했다고 할 수 있는 《논어》 그리고 가끔 《성경》까지를 거론하면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고전을 받아들이는 경우 어떤 우리가 빠지게 되는 문제들을 지적한다.
“...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는 본성론자의 극단에는 우생학을 지지했던 나치즘이 있었고, 양육을 통해 사람을 얼마든지 개조할 수 있다는 양육론자의 극단에는 공산주의 사회가 있었다. 그래서 본성을 긍정하면 마치 보수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고, 양육을 통한 변화를 강조하면 진보 좌파, 또는 실패한 공산주의(가치가 아니라 시스템)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본성과 양육에 대한 과학은 나치나 스탈린 시절에 그런 양극단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될 수 없었다.” (p.219)
이어지는 네 번째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받고 있는데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으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과학적 논쟁 하나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본성과 양육’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과학적 논쟁 자체를 거론하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과학적 이론조차 당시의 여러 사회적 조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통해 본성이 중요하냐 아니면 이후의 양육이 더욱 중요하냐의 논쟁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데올로기에 따라 이러한 두 축의 이론들 중 어느 하나가 극단적으로 발전하거나 쇠퇴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 완전히 객관적인 것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 어떤 논픽션에도(과학이라는 것에도) 일정 정도의 픽션이(저자의 주관이) 더해진다고 봐야 한다. 객관성이란 주관성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간의 감각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을 인지할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책이란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p.239)
다섯 번째는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되었는데, 여러 책의 학살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 역설적으로 책의 가치를 가늠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이전 왕조나 적을 부정하기 위한’ 조치로, 그리고 ‘우민정책을 위한 방편’으로 자행된 책의 학살이야말로 그만큼 책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힘을 인정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러한 책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자 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러한 힘을 아무도 갖지 못하도록 아예 책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일을 꽤 즐기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이 저자 앞에서만큼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겠다. 하나의 책을 읽으며 그 책의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책을 꺼내들고, 그렇게 읽은 책들을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어 나가는 집요함은 쉬이 습득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저자에게 관심이 생겨 살펴보니 페이스북에서 꽤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badacopy) 재미있는 놀이터를 발견했다는 느낌이다. 가끔 들러 살펴보면 좋겠다.
강창래 / 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 알마 / 375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