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대중적으로 직조되는 우리들 인간사의 소소한 풍경...

by 우주에부는바람

「벚꽃 새해」.

인연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서서히 되새김질된다, 함께 하는 동안 혹은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혹은 영원히 헤어져 버린 뒤에라도... 자신에게 건넨 태그호이어 시계를 다시 내놓으라는 헤어진 여자 친구의 연락과 바로 그 며칠전 그 시계를 팔아버린 남자, 그리고 이 둘이 그 시계를 찾아간 곳에서 마주치게 된 병마용 모형까지... 자잘한 소품과 소소한 이야기가 곁들여진 연애 소설이라고나 할까...


「깊은 밤, 기린의 말」.

“... 엄마는 그때까지 자신이 뭔가를 진심으로 인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내심이란 뭔가 이뤄질 때까지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포기하는 일을 뜻했다. 견디는 게 아니라 패배하는 일...” (p.47) 누군가에게는 참아내지 않고 포기함으로써 인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문제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향한 서른 여덟 살 엄마의 어떤 마음이 느껴진다. 여기에 태호와 쌍둥이 누나 그리고 이 부부의 집에 찾아들었던 강아지의 이야기까지 곁들여지니...


「사월의 미, 칠월의 솔」.

한때 영화배우였다가 미국으로 떠난 팸 이모... 미국 여행에서 잠시 마주쳤던 팸 이모는 그러나 남편과 사별 후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정착한다. 젊었던 이모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 이후 미국에서의 남편과의 사랑... 사랑은 그 나이에 상관없이 사무치는 것이고 한 번 사무친 것은 언제든 다시 떠오르고는 하는 것... 그리고 이야기만큼이나 이 가족의 대화법이 유머러스하니 재미있다.


「일기예보의 기법」.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작되거나 끝난다. 그리고 모든 사랑은 생각과 같지 않다. 일기예보의 오보처럼 잘못된 예측치들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 엄마와 닥터 강의 사랑을 어린 미경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까... 사실 날씨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사랑도 어쩌면 그렇다...


「주쌩뚜니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엄마도 한 사람이고 여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식들은 때때로 놓치기 마련이다. 그 엄마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터널에서 들려온다는 노랫소리와 세상을 떠난 엄마를 오버랩시키는 설정이 애잔한 그로테스크함을 띤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한 여자와의 헤어짐으로 받은 고통으로 정대원씨는 생니를 뽑을 작정을 한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정대원씨는 이가 뽑혀 나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그 생니를 뽑은 치과의 간호사와 함께 몇 개월을 지내게 된다. 창작의 고통을 포함하여 우리가 살면서 느끼게 되는 많은 고통들과 그 고통을 벗어나는 여러 가지 방법,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욱」.

방화로 인해 사람까지 죽이게 된 열네 살 어린 동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외로움 속에서 보낸 동욱의 시간과 그러한 시간의 근처에 있었으면서도 이를 헤아리지 못한 어른들... 그리고 이제 법정 최고형인 15년을 잉어의 몸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는 동욱을 향하여 어른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는 시늉을 하네」.

영범이 열네 살이던 때 헤어진 엄마 윤경이 살고 있는 통영을 방문하여, 이제야 듣게 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저 상인이던 아버지가 그당시 통영을 방문하였을 때 읽던 어떤 소설... 어쩌면 헤어지던 당시의 아버지와 엄마의 사이는 같지만 다른 책인 《늦여름》과 《晩夏》 사이와 같은 것 아닐까...


「파주로」.

어린 시절 다녔던 성당의 신부님 장례식에 들렀다 만나게 된 선배, 그 선배로부터 듣게 되는 나의 아버지와 신부님이 공모하였던 그리고 선배가 보았던 하나의 장면에 대한 이야기, 지금도 믿기 힘든 80년 광주와 조용하게 연결되는 어떤 이야기이다.


「인구가 나다」.

바이올린 연주자에서 바이올린 제작자로 삶의 기로를 바꿔야 했던 은수는 어느 날 인구라는 어린 소년이 들고 온 바이올린을 보고 과거의 어느 한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자신이 건넨 바이올린과 병든 아버지가 머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연주를 하면서 유명세를 탄 인구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 사이를 연결시키는 어떤 이야기의 고리...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200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조금은 난해하다 싶은 단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잠못 이루는 주인공에게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산책, 그러니까 불면과 산책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어떤 망상 속에서 소설은 진행된다.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행복’과 ‘우리 안에만’ 존재하는 ‘고통’, 그 사이에 어쩌면 세상이 있다는 이야기라고 해석해볼 수 있을까...



김연수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문학동네 / 341쪽 / 2013 (201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강창래 《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