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텔일란 마을 인간군상들의 담담하게 일렁이는 일상들...
이스라엘 작가를 읽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유대 민족의 이런저런 아픔들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향하여 보인 폭력성이 싫었기도 했거니와 찾아 읽을만한 이스라엘 작가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오르한 파묵, 움베르토 에코, 이스마엘 카다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모스 오즈가 꽤 낯설다. 게다가 이 작가,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다고 한다.
책은 일종의 연작소설집으로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개척자들에 의해 세워진 가공의 마을인 텔일란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여러 인물 군상들의 일상을 그저 담담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딱히 흥미로운 사건들을 품고 있지 않으니 몰입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의미의 실존’을 담고 있을 뿐 자신의 작품은 알레고리가 아니라는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유대 민족에 대한 여러 은유가 포진하고 있는 것이리라는 의구심에 읽는 내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생각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 어쨌든...
「상속자」.
한 남자가 아리에 젤니크를 방문한다. 이 남자는 자꾸만 젤니크를 비롯한 젤니크 가족들의 이름을 잘못 호명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친척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몸져 누운 이 집의 주인인 노부인에게까지 접근하여 그녀에게 키스한다.
「친척」.
마을의 의사인 길리 스타이너 박사는 자신의 조카가 자신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언을 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게 남다른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기는 조카의 방문을 기다리며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간다. 하지만 그 버스에 조카는 없다. 그는 혹시 조카가 버스에서 잠이 들었을까 싶어 퇴근한 버스 기사를 불러내 다시 버스를 뒤져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조카인 기드온은 없다.
「땅파기」.
전직 국회의원인 페스카 케뎀은 딸 라헬과 함께 텔일란의 변두리에 살고 있다. 괴팍한 노인이 되어 사사건건 딸과 부딪치는 페스카 케뎀은 이제 밤마다 땅을 파는 소리가 들린다며 투정을 부린다. 그리고 이들이 사는 집의 창고에는 한 아랍인 학생 아델이 머물고 있다. 아델은 라헬의 죽은 남편의 친구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아랍인 소년을 전직 국회의원인 페스카는 싫어한다. 그러나 라헬은 모르는 땅파는 소리를 페스카가 아닌 아델도 들었다고 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공유의 영역이 생기기 시작한다.
「길을 잃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 마을의 창립자들이 지은 집들 중 하나에 소설가 엘다드 루빈의 미망인과 소설가의 아흔다섯 살 된 어머니 로사가 살고 있다. 그 주택을 사서 허물고 새로 집을 지어 팔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내게 어느 날 전화가 걸려온다. 집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는 루빈의 전화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엘다드 루빈의 딸인 스물다섯 살쯤 된 아가씨 야르데나를 만난다. 그리고 이 아가씨의 안내를 받으며 그리고 유혹에 노출된 채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어느 순간 문득 멈추게 된다.
「기다리기」.
어느 날 텔일란의 면장인 베니 아브니는 아내의 쪽지를 건네 받게 된다. 기념공원 근처의 벤치에 있던 아내가 건넸다는 쪽지에는 ‘나에 대해 걱정하지 마요’라는 네 마디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베니 아브니는 아내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저기를 거쳐 아내가 자신에게 전달할 쪽지를 부탁했다는 벤치에 도착하였지만 그곳에 아내는 없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앉아 아내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낯선 사람들」.
유체국장이며 도서관 사서이기도 한 서른 살의 이혼녀인 아다 드바쉬가 있다. 그리고 여기 아다 드바쉬를 흠모하는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도서관에 들러 아다의 주변을 서성이며 이것저것을 묻고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서관의 불이 꺼진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밀착시킨다. 시간이 흐르고 아다 드바쉬는 이제 불을 켜겠다고 소년에게 말한다. 아직 어린 소년의 감정과 육체는 이 서른 살의 이혼녀인 그녀에게는 일지 못한다. 이혼녀의 외로움도 소년의 허기짐도 달래지기는커녕 더욱 커져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노래하기」.
오십대 중반의 치과의사 부부인 에드나와 요엘 리벡의 집에 사람들이 모인다. 금요일 저녁이면 이들의 집에서 노래 모임이 있다. 이들 부부는 그러나 어린 아이를 잃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부의 아들은 열여섯 살의 어느 날 침대 밑에서 자신의 머리를 권총으로 쐈다. 마을의 이곳저곳을 헤맨 다음에야 사람들은 그곳에서 죽은 아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집에서 사람들은 노래를 하기 위해 모인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그들을 바라보다 손전등을 들고 침대를 찾아든다.
「다른 시간, 먼 곳에서」.
나는 이십오 년 전에 이곳에 파견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약을 나눠주기도 하면서 이곳을 현상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교체 요원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교체 요원은 이십오 년 동안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던 마을 사람들은 점차 사라지고 이제 나는 쇠퇴해간다.
아모스 오즈 / 최정수 역 / 시골 생활 풍경 (Scenes From A Village Life) / 비채 / 235쪽 / 2012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