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와 정착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생기는 위태로움을 포착하는...
하진은 1956년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14살에서 20살까지 인민해방군으로 복무하였다. 헤이룽장 대학교와 산둥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접한 후 미국에 남기로 결심하였고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전미 도서상, 플래너리 오코너상, 펜 헤밍웨이상, 펜 포크너상(2회), 오헨리상, 아시아계 미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인터넷의 해악」.
자본주의화 되어 가고 있는 중국에 사는 동생은 미국의 언니에게 돈을 보내달라며 이메일을 보낸다. 급속한 자본화의 길에 있는 중국에서 자신을 돋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 자동차를 사기 위해서이다. 언니가 미적지근하게 나오자 결국 동생은 인터넷에 자신의 장기를 팔겠다며 광고를 내고, 이에 놀란 언니는 결국 돈을 보낸다. 짧은 소설에 드러나고 있는 현대 중국의 어떤 실상이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다.
「작곡가와 앵무새」.
영화 배우인 여자 친구가 맡기고 간 앵무새와 작곡을 하는 나 사이에 만들어지는 어떤 교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람과 동물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창작물 사이의 관계라는 세 가지 관계의 패턴이 묘하게 얽혀 들어가고 있다.
「미인」.
예쁘장한 아내 그러나 못 생긴 딸, 그리고 아내의 옆에서 서성이는 수상쩍인 남자를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어떤 위기의식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차차 드러나는 아내의 과거와 그러한 아내를 괴롭히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 수상쩍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뻔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수상쩍은 남자와 단판을 짓고 난 다음, 자신이 찾아가던 목욕탕의 여자 안마사와의 약속을 잡게 된다는 마지막 장면이 평이한 소설을 도발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선택」.
대학 입학 시험을 돕기 위한 과외를 하게 된 나는 그러나 결국 학생의 어머니와 서로 연정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 학생 또한 이 과외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는데... 학생 그리고 학생의 어머니, 그리고 어쩌면 이 두 여성의 중간쯤의 나이인 남자인 나 사이의 묘한 관계가 묘하게 그려지고 있다.
「원수 같은 아이들」.
이민 1세대와 2세대와 3세대... 아예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3세대의 손주들과 1세대인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의 다툼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미국에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자신들의 이름을 바꾸겠다는 손자들과 이민 1세대인 조부모들은 어쩌면 이제 적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십자포화 속에서」.
아내와 함께 사는 집에 찾아온 어머니의 간섭에 아들은 점점 무너져간다. 모자간이지만 이미 벌어져버린 사고 방식의 간극은 어쩔 도리가 없다. 여기에 며느리와의 관계까지 끼어들게 되니 속수무책이다. 결국 자신이 직장을 그만두는 극약처방을 통해 이들은 다시금 평화로워질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이 외형의 평화가 진정한 평화일런지는 알 수가 없다.
「부끄러움」.
자신의 스승이었던 중국의 교수가 미국으로 와서 나와 만남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중국인의 미국을 대하는 태도가 나는 부끄럽다. 결국 그 교수는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한 채 사라지고,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왠지 작가의 자서전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만 같은...
「영문학 교수」.
정식 교수가 되기 직전에 있는 루성은 심사를 위한 서류를 제출한 상태지만, 거기에 적은 단어 하나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영문학 교수가 되려는 자신이 영어 단어를 적절치 못하게 사용한 것은 아닌지 두려워, 아예 교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고 다른 직업을 구하려 돌아다니기까지 한다. 모국어가 아닌 글을 쓰는 자가 갖는 어떤 열등 의식 혹은 위기 의식의 발로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연금 보장」.
나는 간병인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간병을 받고 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그가 자꾸만 내게 치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의 딸은 나에게 그와의 결혼을 제안한다. 표면적으로 부부로 살면 적당한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재산에 대한 권리는 내세울 수 없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나는 이미 나이가 많지만 다시 영어를 공부하고 노조가 있는, 자신의 노후가 보장되는 일을 다시 찾겠다는 다짐을 한다.
「계약 커플」.
중국에 있는 아내나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는 미국의 남녀가 계약을 맺고 한 집에서 커플로 살아간다. 결국 두 사람은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지만 여자의 남편이 미국으로 오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의 행각을 알고 있는 남편은 미국으로 온 이후 여자를 이용하려고만 한다. 어떤 선택은 그 후의 삶을 점점 골치 아픈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벚나무 뒤의 집」.
공장에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나의 숙소는 사실 불법적인 매춘을 제공하는 사설 업소 같은 곳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들을 차에 태우고 호텔로 가는 아르바이트를 겸하게 되고, 그녀들과 조금씩 친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들 중 하나인 후웅과 마음을 주고 받게 된 나는 결국 그녀와 함께 그곳을 탈출하게 된다.
「멋진 추락」.
사원에서 일을 하기로 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간친이 병이 들자 주지는 그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중국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그는 그렇게 빈털터리인 채 억지로 중국행 비행기에 태워질 위기에 처하지만 결국 탈출을 감행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한다. 하지만 그 자살소동은 결국 그를 이 모든 위기로부터 구하게 된다, 그러니 멋진 추락이라고나...
단문으로 해야 할 말만을 간략하게 구사하는 작가이지만 (사실 모국어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작가의 핸디캡이기도 하였을 테지만 하진의 경우 오히려 그 핸디캡이 장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작품은 의외로 싱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경험이 단편집의 모든 소설들에 내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착과 부유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 있다고 보여지는 작가, 그리고 그러한 작가가 쓰고 있는 소설들에 어떤 식으로든 깃들어 있는 정착과 부유 사이의 어떤 불안감이 팽배하다.
하진 / 왕은철 역 / 멋진 추락 (A Good Fall) / 시공사 / 375쪽 / 2011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