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실재 사이의 간극 혹은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
작가의 약력이 소설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대학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다 이후 헤드헌터로 활동하고 직장을 그만둔 후에는 번역 일을 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으로 헤드헌터인 나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저 곁가지로 주인공의 직업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직업 자체를 전면에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에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다 싶은 내용들이 꽤 있다.
“... 직업이 의사인 사람 앞에서 내 직업이 고수입에 시간이 자유로운 일이라고 떠벌릴 것인가, 텔레마케터와 비슷한 일이라고 자조할 것인가. 일의 내용과 수입 정도를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떠벌릴 수 있는 내 직업은 모든 사람이 일의 내용과 수입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의사나 판검사와는 확연히 다른 직종이다.” (p.209)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헤드헌터는 사람 혹은 인력이라는 상품을 취급하는 직종이다.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고 그것에 가격을 매기기 위하여 계량화 혹은 수치화시킬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헤드헌터는 사람을 상품으로 유통시키기 위하여 가치를 매겨야 하는 직업일 것이다. 그러니 이 최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극단의 직업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세연은 제부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보수화되었을지 모른다. 남보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이상과 속세 양쪽에 골고루 뻗쳐 있어 스스로 모순을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p.132)
하지만 이처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일을 하는 나는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일에는 서툴다. 이는 우리 일상에 내재한 여러 아이러니 중의 하나이다. 나의 동생인 세연이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세상의 무지를 반박하는 기자이면서 동시에 부동산 투자에 앞장서고 고시를 준비 중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는데 여념이 없다는 점 또한 소설에 내제된 여러 아이러니 중 하나일 것이고...
“나는 태환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과의 만남을 단숨에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그 밤의 과음을 후회할 뿐. 태환과 다시 만나고 싶은 건 그 밤의 거친 단면을 조금이라도 다듬고 싶어서이다. 이대로 연락이 끊긴다면 그 단면은 영원히 다듬어지지 못하고 틈날 때마다 내 영혼에 생채기를 내리라... 그를 만나고 싶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만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천천히 식사를 하고 싶다.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면서 정중하게 헤어지고 싶다. 그렇게 내 아픈 단면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고 싶다.” (p.249)
자본주의 사회에서 헤드헌터로 살아가는 직장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소설은 연애 소설의 외피 또한 걸치고 있다. 그러니까 흐물이라는 남자로부터 이런저런 대접을 받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안녕한 삶을 위해 태환이라는 남자를 향하고 있는 나의 연애 이야기가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은 항간에 인기를 끌고 있는 칙릿 소설의 외양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세상에는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P.285)
소설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데, 최근 몇 년간의 소설에 (장강명의 《표백》이나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 비해서는 그 무게감과 신선함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직장 생활도 연애 진행도 힘들기만 한데, 그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과 실재 사이의 간극 혹은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너무나 정직하게만 말하고 있는 소설이랄까...
정아은 / 모던 하트 / 한겨레출판 / 294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