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감각적인 문장으로 지적하는 우리의 미욱한 사랑 갈구 방식...
나는 율이를 알고 지낸지 육 년이나 되었다. 큰 키에 잘 생긴 율이와 꽤 친한 친구이지만 실은 마음 속으로는 율이를 이성으로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키 크고 잘 생긴 율이의 연애 이야기나 들을 뿐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지는 못한다. 율이의 엄마가 하는 개미 슈퍼를 지키고 있는 율이를 돕거나, 율이를 도우면서 율이와 시시껄렁한 대화를 하는 것이 고작이다. 때때로 그 대화에는 율이의 현재 진행형인 연애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넌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근본은 있지만 사랑만 받아서 기본이 없어.” (p.12)
오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으나 바쁘게 일하는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인지 율이는, 내가 율이가 나를 좋아하면 좋겠다고 여기는 것처럼 자신의 엄마로부터 사랑 받기를 갈구하는 것 같다. 동네 슈퍼를 운영하는 엄마가 대형 마트의 입점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는 동안, 바로 그 대형 마트의 점원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도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엄마와 함께 쓸 요량인 탓이다.
“... 언젠가 율이는 자신이 소설가가 될 운명에 처한 것 같다고 했다. 읽고 또 읽다보니 어느새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아니 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고 했다. 율이는 어머니의 관심을 받기 위해 숙명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p.41)
율이와의 연애를 꿈꾸는 나 또한 율이의 지청구처럼 온전한 사랑으로 채워진 사람은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것이 나이다. 게다가 할머니는 얼마전 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현재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들을 상대로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해서 정해진 시간만큼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 내가 강조하는 ‘적당한 주의와 관심’은 고객에게나 우리에게나 아주 중요한 문제야. 우리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그저 ‘들어주는 사람’이면 되는 거야.” (p.50)
그렇게 해서라도 소통을 하고자 하는 그들과의 통화에는 큰 테크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적당히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적당한 관심을 가지는 것 뿐이다. 너무 깊게 그들의 이야기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반대로 너무 심드렁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 일은 어쩌면 나의 적성에 꽤 잘 맞는 것 같다, 고 그 일을 나에게 의뢰하는 남 사장은 말하고는 한다.
“... 무엇보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좋았어. 초승달을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랄까. 구름이 스르르 비켜나면서 살며시 드러나듯 애틋하게 빛나는 미소 말이야. 그래서 얘기했지...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달라고.” (p.127)
엄마의 사랑을 바라는 율이와 율이의 사랑을 바라는 나, 그리고 나에게 같은 시간 전화해서 구덩이 이야기만 하던 전화기 속의 남자... 어쩌면 우리들 모두는 우리들 삶의 어떤 부분에 들어차야 할 사랑을 갈구하는데 미욱하다.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라고 말하지 못하고 계속 머뭇거리기만 한다. 그러는 사이 그야말로 시간은 흐르고, 상대방이 떠나버릴 수도 있다.
“할머니와 서로 번갈아가며 등을 밀어주었다. 할머니는 내 등을 손으로 쓸어주며 부들부들한 게 기분좋다, 하고 말했다. 느릿하지만 꼼꼼한 할머니의 손길이 등 구석구석에 닿았다. 언제까지 서로 등을 맡길 수 있을까. 콧속이 액체로 꽉 차는 기분이었다.” (p.101)
최근의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 지니는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조금은 독특한 설정 안에서 꾸려나가며 간혹 도드라지는 감각적인 문장으로 이를 예쁘장하게 포장한다. ‘콧속이 액체로 꽉 차는 기분’이라는 문장을 읽으면 아 그럴법해, 라고 여기게 되는데, 이는 유행하는 일본 사소설의 문장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긍정적인 소설이기는 한데, 어쩐지 심심하고 가볍다.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홍희정 / 문학동네 / 166쪽 / 2013 (2013)